특별 프로젝트 ‘달콤한 이슬 1980 - 그 후’ 윤범모 큐레이터 인터뷰

기자명 송윤재 기자 (songyoonjae92@skkuw.com)

 

광주비엔날레관 뒤 펼쳐진 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 사이로 시립미술관이 나타난다. 이곳에선 광주비엔날레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프로젝트 ‘달콤한 이슬 1980 - 그 후’가 열리고 있다. 프로젝트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세계인의 공유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국가폭력과 저항정신의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고 있는 이곳의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를 만났다.

▲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가 특별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특별 프로젝트 ‘달콤한 이슬 1980 - 그 후’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목적은 무엇인가.
1995년 시작된 광주비엔날레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에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 점검하고, ‘광주정신’을 다시 상기시키고자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조선시대부터 예술을 즐기는 고을이기에 예향이었고, 5·18 광주 민주 항쟁을 통해 의향이라 불렸기에 ‘광주다운’ 무엇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광주다움’의 근본적인 의미를 찾아 학술적으로 규명하고 예술적으로 체계화하고자 했다.
 
이번 특별 프로젝트의 주제가 궁금하다.
‘상처’를 기록하고 ‘치유’하며 이에 더해 상생하는 기본 구조가 이번 전시의 흐름이다. 프로젝트 이름 역시 ‘달콤한 이슬’이라는 뜻의 ‘감로’에서 착안했다. 조선 후기 사찰에서 유행했던 ‘감로도’는 억울하게 죽은 망자를 위로하는 그림이었다. ‘감로도’처럼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광주를 비롯해 세계사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했다. 전시관의 작품 배치도 이 흐름을 따라간다. 입구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담은 그림이 ‘상처’를 기록한다. 이어 ‘감로도’가 상처를 위로하고, 우리나라 전통 수묵산수화와 분청사기가 치유와 상생의 길을 열어준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작품이 같이 전시돼있다. 특히, 한국 최초로 루쉰의 목판화도 들여왔다고 들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광주항쟁의 상징성에는 ‘국가폭력’과 ‘저항정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저항 미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작품에 투영해 표현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문학가로 잘 알려진 중국 루쉰의 ‘목판화 운동’이다. 1930년대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한 목판화 운동은 흑백이기에 이미지가 강렬한데다 대량 생산이 쉬운 목판화의 특성을 극대화시켰다. 이뿐 아니라 나치 시대에 히틀러를 반대하는 목판화를 그린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도 있다. 50점 가량의 작품은 모두 우리와 비슷한 시대적 상황과 그에 맞서는 예술가들의 저항정신을 담고 있다.
 
예술인들이 ‘국가폭력’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
예술은 현실을 담는 그릇이며, 말보다 예술의 울림이 대중에게 더 크게 와 닿는다. 따라서 예술가는 현실과 풍요로운 삶을 방해하는 요소를 직시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작품에 투영하는 현실 참여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나라와 지정학적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아시아의 작품과 내용적으로 유사한 사회를 그린 유럽과 미국의 작품을 모았다. 특히, 한국 분단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한반도의 거울인 오키나와 출신 작가의 작품을 들여왔다. 오키나와는 왕국 시절 일본에 점령당했고,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엄청난 폭격을 받았다. 현재도 오키나와는 미군이 주둔해 있는 상처의 섬이다. 4·3사건을 겪은 제주도와 중국과 분쟁 중이던 대만도 마찬가지다. 이 섬들을 연결해 보면 미군의 동북아 전략을 위한 벨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