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소 - 김무성 (인과계열 13)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고양이가 눈물 흘리는 걸 본적이 있는가? 'TV동물농장'에서 교통사고로 새끼들을 모두 사산한 어미고양이 이야기가 나왔었다. 치료를 위해 어미 고양이에게 다른 새끼 고양이를 붙여 주니 고양이가 울더라. 그 처연한 모습이 참 사람과 닮았다. 또한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 찰나의 실수로 알을 잃고, 그 슬픔에 그와 닮은 눈덩이를 뭉쳐 품으려 하던 아빠 펭귄을 보았다. 품으면 품을수록 녹아내리는 얼음을 보던 고개 숙인 펭귄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모두 마음이 있고, 눈물 흘릴 줄 안다.
우연한 기회로 식물도 그러는 걸 보았다. 작년 이맘 때 재수학원 옥상 한 구석에서 자라던 민들레꽃이 그랬다. 참 강인했다. 흙 한 줌 없는 그 자리에서 초연하게 버티며 서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듯 했다. 과연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에 나올 만하구나 싶었다. 한 가지 더 감동적인 점이 있었다면, 담벼락에 가려서 햇빛도 제대로 못 받던 풀이었지만 머리끝에 달린 두 꽃송이만큼은 하루 종일 햇빛을 받을 수 있던 점이 그러했다. 본인은 그렇게 살아도, 자식들은 멀리 더 풍족하고 밝은 곳에서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그 자체였다. 누나와 나를 기르시는 부모님의 맘이 그러셨을까. 가끔 옥상에 올라갈 때면 그 꽃을 바라보며 다시 힘을 내곤 했다. 어느 날, 그런 꽃을 누군가 꺾었다. 그 누군가에겐 잿빛 옥상에서 노란 점 두 개가 지워진 것뿐이겠지만, 민들레에겐 그게 전부였다. 민들레는 죄인처럼 조용히 고개 숙이고 하루하루 조금씩 죽어갔다. 돕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내 바람과 달리 내 속과 같이 썩어갔다. 민들레가 여러해살이 풀이란 걸 알고 올해 초 봄에도 찾아가 봤지만, 이젠 흔적도 없었다. 참 사람 같다.
늘 그렇듯 시나브로 그 꽃을 잊어갔다. 그러나 5월, 세월호 희생자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하던 노란 리본을 본 순간 다시 그 꽃들 생각이 났다. 모든 유가족들 마음이 찢어지겠지만, 특히나 그 꽃들 생각에 고등학생 자녀들을 잃은 유가족들 마음이 더 걱정됐다. 하물며 말 못하는 동식물도 저런데,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크게 다치셨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후 5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만 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여태껏 질질 끌리고 있는 특별법 논란만 하더라도, 거짓 선동과 대화 단절로 이미 정도를 많이 벗어나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위로는 망정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씌워 어물쩍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 있는 일이다. 그 배에 탔다면 빈부귀천을 떠나 누구라도 위험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진실과 책임을 명확히 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민들레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한다. 우리는 꽃을 행복하게 기를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다시금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