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택수 기자 (ltsu11@ naver.com)

한글날은 1446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1926년에 한글의 전신인 ‘가갸글’의 이름을 따 ‘가갸날’로 출발한 한글날은 1928년 국어학자 주시경에 의해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한글날은 1991년,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됐으나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한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으로 2013년 다시 공휴일로 부활하게 됐다. 올해는 한글 창제를 다시금 기념하고 한글의 문자적·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용산에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했으며, 광화문 광장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 이하 문체부)가 주관하는 한글날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국악, 뮤지컬,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걸쳐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한글날을 반겼다. 10월 9일, 한글문화큰잔치가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 광장을 방문했다.

▲ 한글 옷이 날개 패션쇼 '바람을 바람에 실어'의 모습. /한영준 기자 han0young@

올해 행사의 주제는 ‘한글, 세상의 아름다움’이다. 이에 문체부는 국민들이 문화융성의 바탕인 한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직접 체험하며 한글 창제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의 프로그램들을 엄선했다. 문체부 국어정책과 엄희정 주무관은 “행사를 통해 우리의 위대한 유산인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행사 참여자들은 △뮤지컬 △성악 △전통춤 △패션쇼 등을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광화문 광장 중앙에서는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모자이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로 꽃 융단을 만들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형상화 하는 ‘꽃찬길 프로젝트’다. 백발이 성성한 외국인 부부와 아이를 데리고 마실 나온 가족, 10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형형색색의 꽃잎과 색모래로 거대한 꽃을 하나하나 채워 나갔다. 나이, 성별, 국적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있었다. ‘꽃찬길 프로젝트’를 공동 주관한 아트앤쉐어 김영기 대표는 “한글날의 취지에 맞게 *인피오라타를 순우리말인 꽃찬길로 바꿔 행사를 기획했다”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한글 사랑의 메시지를 표현했다”고 전했다. 중앙에서 주위를 둘러보자 피아노 소리와 함께 감미로운 음악이 들려왔다. 히잡을 쓴 여인과 동영상을 찍고 있는 라틴계 남성이 직접 작사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직접 쓴 가사를 즉석에서 노래로 만들어 주는 ‘my song project’ 행사였다. 프로젝트의 작곡가 서범진씨는 모든 사람은 시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노래를 만들어 주는 활동을 해왔다. 사람들이 적어준 가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영감을 받곤 한다는 그는 “한글날을 맞이해 한글을 알리러 광화문에 나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9일 행사에는 문체부 주최로 활동하는 대학생들의 모임 ‘우리말 가꿈이’가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우리말 가꿈이’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격상시키고,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글단체다. 이들은 서울 시장에게 지하철의 스크린도어를 ‘안전문’으로 바꿔달라는 손 편지를 보내는 등 한글 순화 건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들은 한글날 당일 시민들과 함께 한글 상식에 대한 퀴즈쇼를 진행하며 가족 단위 참가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이들 앞에서 직접 만든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한글이 만들어진 날과 한글날의 효시 등을 퀴즈형식으로 묻기도 했다. 이어서 진행된 한글 옷이 날개 패션쇼 ‘바람을 바람에 실어’는 한글만을 사용해 직접 디자인한 옷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순 한글만 쓰인 옷은 영어로 된 브랜드 상표가 범람하는 것과 대비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다. 패션쇼는 바람개비, 스케치북, 풍선 등 아이디어 넘치는 소품들로 쇼에 스토리를 부여하며 독특한 감성을 이끌어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오마주한 한글에 대한 스케치북 사랑고백이 나오자 관객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패션쇼 사회를 맡은 우리 학교 김한솔(영문 12) 학우는 “바람 소리를 따 살랑살랑 이라는 단어를 티셔츠에 새겼는데 매우 아름다웠다”며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옷에 한글을 응용한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 한글을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온 것 같아 의미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우리말 가꿈이’가 계획한 참여 행사는 아이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 내며 준비한 선물이 다 동나버리기도 했다. 대다수를 차지한 가족 단위 참가자와, 외국인 참가자 모두가 행사를 즐기며 한글의 소중함과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한 때였다. 가족과 함께 광화문 행사에 참여한 시민 권수연(40)씨는 “아이에게 한글날의 의미를 가르쳐주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시작해 7번째 행사를 맞이하는 ‘한글문화큰잔치’는 많은 시민들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피하테는 "순수한 국어를 살려 쓰는 민족은 번영하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글날’을 단순한 휴일이 아닌 우리말의 이해를 다지는 날로 인식하고, 훌륭한 우리글을 잘 다듬고 가꿔 나가길 기대해본다.
 
*인피오라타 :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꽃과 색모래 등으로 광장과 거리에 그림을 표현하는 작업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