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희준, 정정락 기자 (webmaster@skkuw.com)

#1 지난 9월 17일, 2학기 자과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 이날, 마지막으로 상정된 안건은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학생 총투표였다. 이는 총여의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 위원으로서의 자격과 재정배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총투표다. 이후 대의원들의 논의가 이어지는 중에 장은정(전자전기 11) 학우를 비롯해 총여학생회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일반 학우들도 참여해 논의가 진행됐다. 의결결과 △찬성 32표 △반대 3표 △기권 3표로 안건은 통과됐다. 따라서 이번 총학생회 선거 때 총여 학생 총투표가 실행될 예정이다. 장 학우는 “젠더 문제에 집중해 이야기할 기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발언했다”고 전학대회 참여 취지를 밝혔다.

#2 인사캠의 경우, 총여 학생 총투표 안건은 부결됐지만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후보가 나오지 않아 총여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했다. 2012년 총여학생회 선거에서는 4일에 걸친 기간에도 불구하고, 최종 투표율 46%로 과반수를 넘기지 못해 선거가 무효처리 됐다. 정후보였던 윤이나(사회 09) 학우는 출마 전에 비상대책위원회장의 책임을 맡았었다. 그는 “비대위는 중운에서 인준을 받아야해 출석을 했는데, 중운위원들에게 반발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총여가 왜 있어야하느냐 등 총여학생회와 여성주의에 호의적이지 않던 분들도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3 총여의 존폐문제는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홍익대는 최근 학생 총투표를 거쳐 총여학생회를 폐지했다. 홍익대 총학생회 최창훈 회장은 “총학생회칙에서 총여학생회를 삭제한 뒤 대체기구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있었는데, 매 해 필요에 따라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결정됐다”고 밝혔다.

▲ 자과캠 학관 2층에 위치한 총여학생회실.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김은솔 기자 eunsol_kim@

사회 전반의 여성주의 담론 위기
총학생회가 사라지는 등 대학 내 여성주의 담론이 위축된 것은 사회 전반의 여성운동 및 여성주의가 약화된 결과다. 국내 여성주의 운동은 정치·경제적 변화로 2000년대 후반 이후 위축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사학과 정현백 교수는 “국내적으로는 보수적인 담론이 확대되고 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전지구화가 이뤄지면서 여성운동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국은 서구나 일본에 비해서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가 빠른 속도로 도입됐지만, 구성원들의 의식구조는 느리게 변화했다”며 “의식구조가 제도를 따라오지 못해 그 역반응으로 반여성주의적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학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김치녀’ 등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노동 유연성이 증가하면서 청년실업이 심화됨에 따라 경쟁자가 되는 여성들에 대한 경쟁의식과 혐오감이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과거의 대학생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가 보장돼있었으나,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있다”며 “자기계발 담론이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게 됐다”고 대학가의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를 분석했다. 개인들은 본인의 불안감과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해졌고 젠더적인 시각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권력을 지닌 약자이기에 공격 및 분노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 분위기와 함께 독립적인 분과학문으로서의 여성학도 그 저변이 좁아졌다. 한때 많은 대학에 열렸던 여성학 전공 역시 점차 줄어 현재 학부에는 △동덕여대 △서강대 △이화여대에만 여성학 연계전공이 개설돼 있다. 이 교수는 “많은 분야에서 젠더 관점은 굉장히 중요한 관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분과 학문으로서 여성학은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위기와 함께 위축됐다”고 말했다.
여성운동이 활발할 때, 여성부가 생기고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마다 여성정책 담당관이 생기면서 여성학도 취업의 문이 넓어졌지만, 여성운동이 약화된 뒤론 그 문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정 교수는 “최근 여성 관료 자리가 축소되면서 대학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회의가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한양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주최한 여학생 체육대회에서 여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한양대학고 총여학생회 제공

여성주의 활동의 어려움
총여학생회와 같이 여성주의를 향유하는 다른 학내 단위들 역시 △단위 재충원 △재정 △정치화 등의 영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먼저, 단위를 구성할 학우들이 충원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 학교 문과대 성정치국 업무는 이혜리(중문 12) 국장이 혼자 맡고 있다. 이 국장은 “혼자 여성주의 관련 사업을 하게 되다 보니, 뒤를 이을 학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주의 교지의 경우 재정난이 큰 걸림돌이다. 우리 학교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은 이번 학기에 나오지 못하게 됐다. 2002년 인력난 때문에 발간하지 못하게 돼 지원금이 끊긴 정정헌은 2012년 광고 대행사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 다시 펴내기 시작했다. 정정헌 박민주 편집장은 “지난 학기에 학교로부터 다시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학생처장과 면담을 하려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중앙대 여성주의 교지 녹지 역시 학교 측에서 일정한 예산을 받는 형태가 아닌, 학생들이 등록금을 낼 때 같이 내는 기타납부금을 통해 발간비를 마련한다. 녹지 임민경 편집장은 “매 학기 예산이 유동적이라 다음 학기에는 책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고 어려움을 표했다.
조직 전체의 단일한 여성주의가 없어 학내 사안에 대해 단위 명의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 역시 담론 형성을 저해한다. 임 편집장은 “구성원 간 여성주의에 대한 상이 달라 매 학기 잡지의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고, 학생사회 내의 문제에 대해서도 견해차 때문에 한 가지의 입장으로 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 대학 내 여성주의 네트워크 '물,길' 회원들이 '총여 선거에서의 남학생 투표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영준 기자 han0young@

▲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가 중앙대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녹지'와 성 소수자 모임 '레인보우 피쉬'와 함께 연 낙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상영회. 영화가 끝난 뒤 조세영 감독과 손희정 영화연구자와 함께 씨네토크를 진행했다.

여성주의 담론 이야기할 단위는?

대학 내 여성주의 담론이 어려움에도 의미 있는 움직임을 이어가는 단위들이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NPO 회관 다목적홀. ‘볼매꾼(볼수록 매력 있군)!’ 활동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대학 내 여성주의 단위 간 네트워크 ‘스물, 여성주의로 길을 잇다(이하 물,길)’ 5기가 지난 4월부터 6개월간 진행한 학내 외모품평문화 개선사업과 <취업현장 외모요구사항 실태조사>의 결과 발표가 있었다. 물,길은 반성폭력 등 이전부터 학내 여성주의 담론의 형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한국여성민우회(대표 김민문정, 박봉정숙)에서 2009년부터 매해 구성하고 있는 학내 여성주의 단위 네트워크다. 물,길 5기에는 동국대 총여, 한양대 총여 등 8개 단위가 참여했다.
대학가에서 점점 총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도 한양대 총여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한양대 총여는 성적 대상화, 외모 품평문화, 군대문화 등을 주제로 세미나나 수다회를 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학생 체육대회로 유명하다. 한양대 총여 김소영 회장은 “단과대 별 체육대회에서 여학생은 축구나 농구와 같은 스포츠에서 경기에 참여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주로 응원을 하는 객체의 위치에 있다”며 여학생이 직접 경기를 뛰는 여학생 체육대회의 개최 취지를 밝혔다. 2년째 이어오는 여학생 체육대회의 성과로 한양대 내에는 여학생 스포츠 동아리가 설립되기도 했다. 가시적인 사업도 있지만 총여는 성폭력 상담 등과 같이 성과를 보여줄 수 없는 사업 역시 진행한다. 김 회장은 “보여줄 수 없는 사업들에서도 그 가치가 큰데 인정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한, 한양대 총여는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기구가 아니다. 실제로 한양대 총여에는 집행부원 중 남학생도 있으며, 이번 학기 전학대회에 안건으로 남학생 휴게실 신설 안건도 내려 했었다. 김 회장은 “비록 정족수가 부족해 내지 못했지만, 학내 휴식권의 경우에는 남학생도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라며 “총여 사업의 중심을 여성으로 잡긴 해야 하지만 남성 역시 차별을 받는 경우 충분히 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총여가 사라진 학교들에서는 그 대안으로 성평등위원회(이하 성평등위)가 들어서고 있다. 지난 학기 전학대회 의결을 통해 총여를 폐지한 중앙대학교에는 이번 학기에 성평등위(위원장 김수향)가 중운에서 인준을 받았다. 김성욱 부위원장은 “성평등위는 중앙대의 모든 사람들의 성 평등을 위해 활동한다”며 “젠더 관계에서 좀 더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과 반성폭력 및 올바른 성문화 정착”이라는 활동목표를 밝혔다. 성평등위는 총여와 다르게 선출이 아닌 임명을 통해 운영된다. 때문에 총여처럼 후보자가 없거나 투표율이 미달돼 운영이 정지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중앙대 성평등위는 기존 총여들이 해오던 △독서토론 △여성주의 영화 감상 △페이스북상 웹진 발행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구라 그 존재를 모르는 학우가 많아 더 활발한 홍보가 필요하다”며 “다양한 접근과 행사를 통해 젠더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성평등위는 투표로 구성된 선출직이 아니기에 학생회비를 배분받지 못한다. 중앙대 성평등위의 경우, 행사를 준비할 때 총학생회에 비용을 요청하고 총학생회의 심의에 따라 총학생회비를 배분해준다. 현재는 폐지된 총여의 회비 중 남은 금액을 이월해 사업비로 보태고 있지만, 사업에 필요한 활동비를 정기적으로 배분받지 못하면 활동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활동비의 정기적인 수급은 성평등위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로 지목된다.
우리 학교 자과캠에서는 2학기 전학대회에서 총여 총투표 안건이 통과된 뒤, 총여 존속을 지지하는 내용의 자보가 붙었다. 자보를 쓴 디딤돌의 오휘수(신소재 09) 학회장은 “비록, 그동안 총여학생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지만 젠더를 다룰 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자보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남성 역시 젠더 담론의 당사자라고 주장한다. 오 학회장은 “지금 시대에도 일부 남성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남성들이 가부장제에 억압된다”며 “남성에게도 여성주의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