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촌사람들 - 통나무집 김영순(48) 씨

기자명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세련된 도시여자. 그녀의 첫인상은 기대했던 푸근한 큰이모가 아니라, 깍쟁이 작은이모에 가까웠다. 숏 컷에 깔끔한 화장,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는 술집 이모보단 커리어 우먼을 연상시킨다. 예상치 못했던 첫인상에 대해 말해주자, “무슨 그런 말을 하냐, 짜샤!”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녀. 지난달 28일, 자과캠 쪽문 ‘통나무집’에서 영락없는 술집 이모 김영순(48) 씨를 만났다.

▲ '통나무집'의 이모 김영순(48) 씨.

통나무집 그녀가 처음 이곳에 자리 잡은 건 지난 2008년 여름이었다. 일 욕심에 메이크업, 천연화장품 판매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던 그녀는, 7년 전 자과캠 쪽문 근처에 ‘통나무집’ 문을 열었다. “원래 밥집을 차리고 싶었어. 음식 만드는 일이 제일 자신있거든.” 고민 끝에 업종을 술집으로 정했지만, 그녀는 지금도 하루에 큰 밥통이 2개나 비어나갈 정도로 여느 밥집 못지않게 많은 안주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그녀의 요리 철학은 확고하다. “음식은 자기가 좋아하고 즐겨 먹는 것을 해야 해. 주인이 음식을 안 하거나 관심이 없으면 망할 수밖에 없어.” 양념이 돼 나오는 포장육을 사용하면 값도 싸고 손도 덜 가지만, 그녀는 모든 재료를 직접 사 와서 하나하나 손질한다. 실제로 닭볶음탕, 김치찌개 등 가게에서 파는 안주들은 대부분 그녀가 집에서 딸들에게 해주는 단골 메뉴들이다. 조미료 대신 김칫국물이라는 그녀만의 비법으로 맛을 낸 매콤한 음식들은 학우들에게 또 찾고 싶은 엄마의 집 밥을 떠올리게 한다.
“계산하지 않는 장사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요리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그녀지만,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겐 한없이 후하다. 대부분의 손님이 학생 단골들이기에 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안주 가격은 다소 저렴한 편. 특히 학생들이 자주 먹는 세트 메뉴의 가격은 처음 가게를 차린 2008년부터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그녀는 서비스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학우들에게 가장 많이 주는 서비스가 화채이기 때문에, 그녀의 냉장고는 항상 과일로 가득 차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다 보니 과일을 잘 못 챙겨 먹잖아. 또 속 버리게 깡 소주 먹는 애들이 많은데, 그래도 과일은 주면 먹더라고. 그래서 항상 챙겨놔.”
평소에는 주변에 피해가 갈 만큼 시끄럽지 않으면 내버려두는 그녀지만,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어김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등짝을 때리며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일도 다반사. 하지만 그녀만의 애정 방식을 아는 학우들은 ‘츤데레’ 그녀를 이모라 부르며 따른다. 단골 학생들과는 가족같이 지낸다는 그녀는 가게 안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다. 자취방에 반찬이 없으면 제 밥 못 챙겨 먹는다고 한소리 하면서도 끝끝내 반찬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엄마 같은 그녀는 학우들의 연애에도 관심이 많다. 젊은 시절 연애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해 아쉬웠다는 그녀. 그 때문인지 그녀는 가게를 찾는 학우들에게 ‘연애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젊을 때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해. 이것저것 재지 말고.” 서슴없이 이상형을 묻고, 눈이 높다며 한소리도 하는 등, 그녀는 친언니처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사랑의 큐피드로도 활동하는 그녀 덕에, 실제로 가게에서 테이블 건너 사랑이 꽃피는 일도 있었다고.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여는 통나무집에는 아르바이트생이 따로 없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돈으로 아이들에게 서비스를 더 챙겨주려는 생각에서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즐거워. 학생들을 만나면서 나도 에너지와 위로를 얻거든.”
기댈 수 있는 푸근한 이모부터, 소소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단짝 친구까지. 팔색조 매력의 그녀를 만나 한바탕 수다를 떨고, 그녀가 직접 만든 엄마 손맛 요리를 먹고 싶다면, 언제든지 주저 말고 통나무집의 문을 두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