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PD 인터뷰

기자명 조희준 기자 (choking777@skkuw.com)

치지직... 치지직... 정규 편성시간임에도 정파가 됐나. 이윽고 검게 바뀐 화면에 음악이 흐르며 짤막한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 화면이 멈추면서 나오는 자막을 모두 이어도 몇 문장 되지 않는다.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프로그램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강렬하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만나봤을 ‘지식채널e’. 지난달 29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교양 프로그램을 선보인 김진혁 PD를 만나 지식의 통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어떻게 PD를 꿈꾸게 됐나.
중학교 때 방송반 친구들이 실수를 해 다 모두 그만두게 되자, 당시 방송반 담당이던 기술 선생님이 내게 방송반 부장을 맡겼다. 그 때마침 국내에 처음으로 가정용 캠코더가 나왔는데, 기성회장이 학교에 이를 기증했다. 가정용 캠코더라 해봤자 VCR이 들어가던 어깨에 메는 캠코더였지만, 1년 동안 갖고 놀면서 영상을 만드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고등학교 때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 처음에는 이과를 갔지만, 진로에 대해 고민해본 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문과로 옮겼다. 당시에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으면 영화과나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지만, 영화과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해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다.

93학번이면 지금과는 대학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다. 대학생활은 어떻게 보냈나.
좋은 시절이었다. 학생운동의 성과로 87년 개헌이 돼 ?이겼다?는 분위기였다. 동시에 신해철이 등장하는 등 문화가 폭발하기도 했다. IMF 이전이다 보니 고속성장의 분위기도 남아있었다. 지금의 ‘청년실업’이란 단어가 없었다. 80년대 학번 선배들은 ‘언론사나 방송사 안 되면 광고사 가면 된다’고 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취업은 쉽지 않았지만, 대학생들이 취업에 압박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놀진 않았다. 철학과 심리학 수업을 찾아 듣고, 영화를 좋아해서 굉장히 많이 봤다. 1학년 때 과대표를 해 선배들을 따라 집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위압적이진 않았다. 다른 것보다 나는 과 CC로 유명했다. 학교 정문부터 학생회관까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과격한 문구의 대자보로 차 있었지만, 어쨌든 연애도 하면서 행복한 대학생활을 했다.

영화감독의 꿈은 어떻게 됐나.
방송국에 들어와서도 원래 다큐멘터리나 예능보다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다. 조연출 시절에만 해도 EBS에 청소년 드라마가 있었다. 하지만 PD가 됐을 땐 드라마 편성이 굉장히 줄어들어 아쉬웠다. 사실, 지식채널e를 시작하기 1~2년 전에는 다른 방송사 면접도 봤지만, 잘 되진 않았다. 어느 순간 내가 꼭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영상을 만드는 데 재능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고, 지식채널e로 발령받았을 땐 거기에 열정을 온전히 쏟아 부을 준비가 돼 있었다.

지식채널e가 처음에는 기존 다큐멘터리를 요약하는 의도로 기획됐다고 들었다. 왜 ‘메시지’ 전달 중심의 교양프로그램으로 바꿨나.
애초에 편성할 때부터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다 화면을 멈추게 하려고 5분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을 기획됐다. 첫 편을 만들면서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했는데, EBS 프로그램들이 대체로 시청자를 가르치려 하는 것이 고루한 인상을 주는 주된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에서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생각할 거리나 화두를 제안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지식채널e를 만들었다. 반응이 좋지 않으면 컨셉을 바꿔야 했겠지만, 반응이 좋아 꾸준히 갔다.

 

▲ <시험의 목적>편 캡쳐.

 


 

 



 

가르치려 드는 게 지식을 전달하는데 적합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런 계몽적인 방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스스로 필요해 받아들이고자 하는 이에겐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어떤 정보를 원하는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과 필요와는 별개로 사회적인 강요 때문에 정보를 수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익명의 다수에게 전달되는 방송은 수용자의 요구를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그런 방송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직접적인 소통은 할 수 없을지라도 최대한 예상해서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지식채널e뿐만 아니라 저서인 <지식의 권유>, <감성지식의 탄생> 모두 제목부터 ‘지식’이 들어가 있다. 과연 지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식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은 생각의 도구다. 우리는 지식이 스스로 무언가 생각한다고 여기고, 지식을 많이 알면 생각이 저절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식은 우리의 생각에 도움을 줄 뿐, 스스로 답을 내려주진 못한다. 지식은 검증되고 도식화 된 결과물일 뿐, 애초에 지식은 생각으로부터 온 것이지, 지식으로부터 생각이 온 것은 아니다.

지식채널e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소재에 대해 다루며 주목을 끌었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당연히 부담스러웠다. 혹시라도 이해당사자나 정부로부터 압력이 들어오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왠지 교육방송에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소재를 다루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관념을 깨고 시의성 있는 문제를 다루는 게 부담스러웠다. 사회적인 아이템도 지난 일들을 다뤘지, 일이 벌어지는 와중에 다룬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시작이었던 황우석 편을 제작할 즈음엔 지식채널e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문제적인 소재를 다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광우병을 다룰 땐 당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프로그램이 송출되지 않을 뻔하기도 했다. 결국, 편성기간이 끝난 3개월 뒤에 어린이·청소년 팀으로 발령됐다.
나는 그저 하는 일을 충실히 하려고 애쓴 것 뿐이다. 지식채널e의 경우에는 황우석 편을 계기로 화제가 되는 소재도 다뤄왔다. 그래서 이슈가 되는 소재가 생기면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식채널e는 그렇게 시청자들과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거창한 저널리즘이나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했기에 제작한 것이다.

▲ 김진혁 PD의 저서인 '감성지식의 탄생'. /ⓒ 알라딘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있다. 교수를 맡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전에 교수를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큐프라임에서 반민특위 편을 제작하던 중에 인사발령을 받아 EBS에서 나와야 하나 고민했다. 그즈음에 지인을 통해 한예종 영상원에서 신규 교원을 채용하려 한다는 것을 듣게 됐다. 그 전에 제안이 들어왔을 땐 웃고 끊었는데, EBS를 퇴사하려니 생계 때문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연락을 받았을 때 내게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한예종은 다른 대학과 달리 현업을 계속 잇는 것이 연구 실적이기에 그랬다. 방송국에서 나오면 작품 활동을 못 하는 것 역시 마음에 걸렸는데, 이곳에서는 생계와 작품 활동 두 가지 다 충족이 된다. 내 생각만 하고 학생들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두 가지가 중요한 계기였고, 한예종 교수가 된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을 꾸준히 만나면서 청년문제에 느끼는 점이 많을 것 같다.
내 대학 시절 이야기만 들어도 알겠지만, 나는 축복받은 세대다. 막 졸업했을 때, IMF가 터져 졸업 이후의 상황은 사실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졸업하자마자 신입사원은 뽑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대학 때 자유로움이란 것을 한 번 누려 봤는데, 지금의 청년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어렵다. 그것이 세상이란 것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던 세상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정치적 이념과는 별도로 지금 대학생들을 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꼭 취업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 끝없는 결핍으로 남는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의 중장년층이 끊임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가난이 준 트라우마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해소된다고 끝나지 않고 계속 남는다.
대학생들이 현재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화두를 만들어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즐길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물론 선배 세대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스스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큰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많은 대학생이 PD를 꿈꾸는데 해줄 말이 있다면.
창조적인 컨텐츠를 만들 때, 그 안에 담기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세상에 대한 이해다. SF를 만든다고 해도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통찰이라고 하는 것은 꼭 하나의 정답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규정하고 해석해나가는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생 시절에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에 한계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성을 유지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문학 서적을 찾게 될 것이다. 본질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통찰이고, 인문학 서적은 그저 이전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했던 흔적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