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소 - 최정호(유동 12)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열을 올려가며 무언가를 고발하고 싶은 것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 어디 천부당만부당한 일인가!”하며 억울함을 토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내게 일어난 귀엽고, 앙증맞은 해프닝을 언젠가는 같은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대학의 문턱을 갓 넘은 프레시맨 때였다. ‘성균프레시맨세미나’라는 수업을 들었었다. 성균프레시맨이라면 그런 수업 하나쯤은 응당 들어줘야 할 것 같은 어설픈 자부심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내가 수강한 성균프레시맨세미나는 ART BRUT라고 하는 정신분열증 환자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기대와 반대로 교수님께서는 딱 1학점만큼, 혹은 그 이하의 열정을 갖고 계셨다. 휴강이 잦았고, 그마나 정상수업이 진행됐던 수업시간 마저 매번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같은 피피티로, 같은 수업을 반복하실 때도 있었다. 직접 가져오신 PPT를 보시며 ‘어, 이게 뭐지? 조교가 이런 걸 다 첨부해놨네. 나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떠시며 설명 아닌 설명을 해주실 때는 정말이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진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유럽으로 ART BRUT 미술관 탐방을 다녀오셨다. 탐방을 다녀오신 교수님께서 한껏 들뜬 목소리로 후기를 들려주셨다. 교수님께서는 한 미술관에서 가져온 작품 CD를 보여주시겠다며, 강의실의 불을 끄시고는 CD를 재생하셨다. 독일어 내레이션이 흘러나왔고, 화면에는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 화면보호기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스무 명의 학우들이 함께 멍하니 영상을 기다렸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났다. 어디선가 내레이션이 아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영상에 집중한 교수님께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계셨다. 그러시다가 하시는 말씀이.
“요즘 유럽에서는 ART BRUT 작가들께서 디지털작업도 하십니다!”
한순간에 화면보호기는 유럽 어딘가에서 지금도 디지털 작업에 열중해 있을 한 정신분열증 작가의 작품이 되었다. 마법같이. 멍하니 앉아 약 10여 분간 화면보호기를 감상할 수 있는 건 아주 이색적인 체험이었는데, 보다보니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어쩌면 정말 ART BRUT 작가의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학우가 손을 들곤 “교수님, 이건 그냥 미술관 소개하는 음성파일인 것 같은데...”하고 말했다. 화면보호기가 제 아무리 화려한 색채와 모양을 뽐낸대도 10분 이상은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저건 화면보호기입니다, 교수님.”하고 다른 학우가 덧붙였다. 교수님께서는 당황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10분가량을 더 화면보호기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후에도 다양한 교수님들을 뵐 수 있었다. 레포트 심사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한자원문을 타이핑했느냐’를 내건 교수님, 책을 안 가져오자 “너는 저기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라!”라고 말씀하신 교수님, 그리고 논어의 학이편에 나오는 “교언영색”을 예로 들어, 몇 십분 내내 특정 정치인을 노골적으로 조롱하시는 교수님도 계셨다.
스스로의 삶에 기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앞선 분들과의 만남은 재밌는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 물론 나열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대학교 교수/강의평가의 무력함과 높은 교수재임용율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학우들이 엉뚱한 교수님과의 만남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한번 쯤 이 일화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