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속의 예술 - 영화 ‘졸업’ 속 노래 ‘The Sound Of Silence’

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 영화 '졸업' 캡쳐













‘낯설은 풍경들이 지나치는 오후의 버스에서 깨어 방황하는 아이 같은 우리,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벌써 지나친 건 아닌지 모두 말하지만 알 수가 없네…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대학 졸업을 앞둔 청춘들의 공허한 마음을 노래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 가사인데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동명의 영화 역시 청춘 세대의 불안, 이로 인한 방황과 일탈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졸업’은 주인공 벤자민이 일류 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LA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부유한 가정과 화려한 스펙. 희망찬 새 출발을 기대할 법도 한데, 무빙워크에 몸을 맡긴 그의 눈동자는 하염없이 공허하고 불안합니다. 미숙함에 관대했던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무한한 책임감을 지고 냉혹한 사회와 마주하는 것,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위선적인 사회에 편입하는 것 모두 무의식중에 중압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방에 놓인 수족관 속 물고기, 그리고 잠수부 모형으로 형상화됩니다. 심지어 그는 잠수부 복장을 한 채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꼭두각시 쇼를 선보이게 되죠. 잠깐 할 말이 있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아버지는 가차 없이 무시합니다. 기성세대는 모범적인 사회 기준에 순응하는 그를 치켜세우지만 정작 그의 내면의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무언가를 강요받는 장면 마다, 이것이 가진 억압의 무게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잠수부 복장을 하고 수면 아래로 끝없이 가라앉습니다.
숨 막히는 잠수복 안에서 현기증을 느낀 그는 ‘일탈’을 감행합니다. 바로 그를 유혹하는 로빈슨 부인과의 육체적 관계에 탐닉하는 것이죠. 그의 일상과 로빈슨 부인과의 정사 장면이 번갈아 등장하는 장면은 쾌락에 익숙해지면서도 여전히 공허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의 심리를 보여줍니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Simon and Garfunkel’의 ‘The Sound Of Silence’가 흘러 퍼지는데요.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느꼈던 불안과 상실의 정서가 몽환적으로 표현됩니다. ‘말하지 않으면서 대화하는 척하는 사람들/듣지 않으면서 경청하는 척하는 사람들/아무런 뜻도 없는 공허한 노랠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가사가 ‘아무도 침묵의 소리를 막으려 하지 않았네’하며 이어집니다. 밝은 선율에 덧입혀진 슬픈 가사가 위선적인 현대인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꼬집는데요. 노래는 벤자민의 불안감과 공허함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마다 삽입되며 청년 세대가 마주하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 그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의 소리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보여줍니다.

▲ ⓒflickr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그는 ‘일탈’을 통해 비로소 물 위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물 위에 떠있는 그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계획 없이 살아가는 그를 나무랄 따름이죠. 튜브 위에 떠다니던 그는 갑자기 무게 중심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은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을 만나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는 특유의 삐딱함으로 일레인을 대하지만 그녀의 순수함에 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곧 로빈슨 부인과의 불륜 관계가 들통 나고, 상처를 입은 일레인은 벤자민을 떠나 학교로 돌아가죠. 다시 방 안 수족관 앞에 누워 담배를 태우던 그는 일레인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하면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게 됩니다. 사랑이라고만 보기엔 불안하게 우수에 차 있고, 충동적입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일탈하는 벤자민. 로빈슨 부인이 이런 ‘일탈’의 상징이라면 순수한 일레인은 충동적 행위를 정화할 수 있는 ‘양심적 돌파구’ 같은 존재죠. 사회적 규범과 기성세대의 관습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면서도 막상 미래를 떠올리면 수레바퀴 위에서 함부로 내려올 수 없습니다. 마침내 그는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일레인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게 됩니다. 과연 그는 사랑의 쟁취자가 된 것일까요. 버스를 잡아타고 안심하는 듯 미소를 짓는 이들. 그러나 버스 속 중년의 어른들은 모두 이 둘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이들이 마주하게 될 사회의 차가운 시선인 것이죠. 순간 오묘하고도 낯선 표정으로 굳어가는 벤자민과 일레인의 표정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버스를 타고, 수많은 걱정거리를 짊어진 채 어디론가 떠나게 됩니다.
다시금 낮게 울려 퍼지는 ‘The Sound Of Silence’. 가사는 계속해서 ‘당신들은 침묵이 암덩어리처럼 퍼져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가/하지만 나의 외침은 소리 없이 내리는 빗방울 같았고 침묵의 우물 속에서 공허하게 메아리 칠뿐이네’로 이어집니다. 온전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견고히 짜인 사회적 틀 속에서 차단되고 마는 답답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는데요. 사랑을 쟁취해 떠나는 버스 속에서 무표정으로 변해 버린 이들.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장면에 전율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1960년대 고도성장의 후유증으로 윤리적 몰락을 겪었던 당시 미국의 청년 세대, 그리고 가만히 침묵하길 요구받는 안녕하지 못한 우리네 청춘. 언제부턴가 더 이상 ‘졸업’은 희망찬 새 시작이기보단 냉혹한 경쟁으로의 출발선이 돼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과연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기’ 위해 침묵의 소리가 깨지는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