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최근 <개그콘서트>를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유아들의 부모와 교사에게 유아들이 가장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을 조사했더니 뜻밖에도 <개그콘서트>라는 답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이 매겨져 있는 <개그콘서트>를 유아들이 시청하고 있다는 것은 부모들이 연령 구분을 인식하지 않고 있거나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뜻했다.
<개콘>을 UCC 영상으로 몇 편 시청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개콘>의 장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말 위주의 코미디인 ‘풍속희극’이니 어느 정도 익살스럽고 과장된 언어를 예측하기는 했다. 그러나 시청하면서 내내 편치 않았던 이유는 대화의 규칙을 깨트리는 대사들과 상스럽고 공격적인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질문에 동문서답식으로 반응한다거나 무응답은 그렇다 하더라도 특히 매력적이지 않은, 비호감으로 설정된 여성 캐릭터에게 은유적, 직설적으로 퍼부어지는 언사들이었다. 공격적인 언어의 정의는 “성격이나 능력, 배경, 신체적 외모를 공격하는 것과 함께 저주, 희롱, 조롱, 협박, 욕설 혹은 비언어적 모욕 행위를 가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거의 모든 캐릭터들의 발화가 그러한 부류에 속했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캐릭터들의 무감각성이다.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그것을 별로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잘생긴(?) 남자들의 관심을 얻는데 집착하고 있다. 그런데 더 희한한 것은 그 코미디를 보며 정말 우스워죽겠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리는 방청객들의 모습이다. 자신도 방청권을 얻어서 <개콘>의 녹화 장면에 있었다는 우리 대학원생이 신나게 들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는 녹화 후에 덧입혀지는 것이라고 일러주기는 했다. 그래도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도 그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와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유아들에 대한 걱정에 앞서서(실제로 그 설문 조사 후에 행해진 유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아들이 그들의 언어와 행위를 모방하고 있다는 증거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온 국민이 참여하고 있는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베르그송은 일찍이 웃음이 사회적인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하였으며 함께 웃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합의를 본, 거의 공범이라 할 만한 저의를 숨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디어 연구자들도 오락 매체의 힘은 겉으로 보이는 메시지가 아니라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가치를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매체가 수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매체는 수용자들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에서 출발한 다음, 이런 수용자들의 생각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디어와 수용자는 순환론적으로 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을 웃게 만드는 고정관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표피적으로는 외모지상주의와 물질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비주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비평가인 캐버너(J.F.Kavanaugh)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소비주의는 기독교를 포함하여 어떤 종교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세계관으로서의 소비주의는 단순히 우리가 어떤 상품을 얼마나 많이 사고 소비하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삶의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인격이 아니라 소모품인 상품으로 보게 하고, 존재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행하고 생산하는 만큼의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관은 삶의 목적과 가치를 부여하는 점에서 ‘종교’에 필적한다.
<개그콘서트>는 이러한 소비주의의 문화적 표현일 수 있다. <개콘>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인격으로서의 자존을 찾지 않고 기꺼이 소모품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여성은 외모로 가치지어지고, 그렇지 못한 여성은 열등함을 소비하는 것이 <개콘>의 약속된 질서이다. 이와 같은 질서를 구현하고 즐기는 개그맨들과 시청자들은 철저히 타자화되고, 물화된 상태로 서로가 제공하는 것들을 등가 교환한다. 개그와 웃음의 생산과 교환 과정은 탈인격적이고 소비적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머리를 식히면서 가볍게(?) 오락의 공식을 즐기고 있는 시청자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과 타인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이 소비주의 세계관의 동조자이자 피해자가 아닐까. 아무도 자신이 상품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개콘>을 즐기고 있는 부모들과 함께 덩달아 웃으면서 그 세계관을 흡수하고 있을 어린이들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