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소 - 고효경(한교 10)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여자가 묻는다. [오늘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남자는 멍하니 여자를 쳐다본다. 쳐다보기만 한다. 얼굴에는 이미 물음표로 가득 찼다. 이내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깨질 것 같은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그것도 몰라? 나 가르마 바꿨잖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창 SNS에서 떠돌던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여자의 태도에 ‘어이’를 ‘상실’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네 가르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뀐 걸 알아채라는 거야? 난 가끔 내 양말 ‘오른쪽’과 ‘왼쪽’이 바뀐 것조차 모른다고! 짧게는 Damn! 이다. 사실 여자에게 있어 가르마는 아주 중요하다. 물론 이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필자의 남동생이 아침마다 그 거구의 몸에 ‘대한, 민국, 만세’나 쓸법한 작은 실 빗을 쥐고는, 눈을 부라려가면서 열심히 가르마를 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몇 번 가르마 이상하다고 했더니 [뭐가 이상해, 괜찮은데]라며 투덜거리더니 이내 머리를 다시 감고 나오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물론 이상하다고 한 건 장난임.) 아무튼 다짜고짜 화를 내는 여자도 이상하지만 가르마 문제가 절대 사소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네이버에만 가도 알 수 있다. ‘가르마’라는 단어를 치면 수많은 가르마 人들이 지식in에 “9:1이 좋아요, 5:5가 좋아요?”를 질문하고 넷 매거진과 수많은 동영상이 가르마를 어떻게 해야 잘 탈 수 있는지, 어떤 가르마가 유행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저 글만 본다면 무작정 화부터 내는 여자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가르마 Problem’이 매우 중요한 사람에게는 바로 저것이 나에 대한 ‘관심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저 ‘가르마녀’ 처럼 뻔뻔하고 시비 거는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에겐 비록 아주 중요한 일일지라도 ‘나 뭐 달라진 거 없어?’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얼마 후 일이다. 남자친구와의 약속에 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화장을 두드리고 있는데 코 밑에 나도 모르는 점이 생겨있었다. 원래 얼굴에 점이 없어서 그런지 괜히 점이 돋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왜 하필 코 밑인지 약간 ‘뺑덕어멈 점’ 스타일이랄까? 기왕 생길 거면 ‘고소영 점’ 같은 게 생길 것이지 하며 불만스러웠지만, 약속이 늦어 따로 점을 커버하지 않고 나갔다. 약속에 나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어, 코 밑에 점 생겼네?]라고 말했다. 순간 따뜻한 기운이 손가락 끝으로 번졌다. 사실 그렇게 큰 점도 아니고 신경 쓰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그런 ‘점’이었다. 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모를 거로 생각했는데 먼저 ‘달라진 점’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26평생을 살면서 얼굴에 점이 없던 나에게 생긴 ‘점’은 굉장히 중요한 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시에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 이 문제를 알아주는 것이 가끔은 관심의 척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가르마 Problem 문제가 누구나 하나씩 있을 것이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 우리가 조금만 상대에게 관심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 이런 것들로 우리 사이가 ‘1°C’ 올라간다면 올겨울을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