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신강 기자 (skproject@naver.com)

지난 7일 우리 학교 문과대학에서 '식민화하는 대학, 대항하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부에서는 대회에서 거론된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이번 학술대회를 조명해보았다.

 

 
‘아직 아님’의 굴레와 인문학의 장소 - 발표자 : 사학과 김태현 교수
16세기 이래 오랫동안 지속된 서구 식민주의는 19세기에 들어서 제국주의 형태로 바뀐다. 이들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바로 ‘문명화 사명’ 담론이었다. ‘문명화 사명’이란 이미 문명화된 서구에는 아직 문명화되지 못한 비서구 사회를 문명 상태로 진입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서구는 이 담론을 통해 타자의 정체성을 정해주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서구는 다양한 세계·문화를 서구의 기준에서 단일한 선상에 놓는다. 이런 구조는 서구와 비서구를 동일한 역사적 시간 위에서 동일한 발전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또한, 서구와 비서구가 물리적 시간상으로 동시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문명 이전 단계라는 공간에 비서구를 위치시키며 서구와 비서구의 차이를 강조한다. 서구를 ‘지금’이라는 기준으로 삼으며 비서구를 아직 문명화가 되지 않은 ‘아직 아님’의 장소로 떨어트리는 것이다.
이에 저항하는 비서구의 무기는 민족주의였다. 영국의 지배에 맞선 인도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한국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정치적 주권을 회복해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면 얼마든지 자율적으로 근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모순을 내재하고 있었다. 비서구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역사를 서구가 설정한 시간 속에서 발전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한 것이다. 결국, 서구적 역사의 발전이라는 통념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서구와 비서구의 공모 덕분이었다.
김택현 교수는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인문학이 삶의 세계를 성찰하는 학문이라면, 식민주의에 맞서 우리가 인문학을 실천해야 할 장소는 다양한 시간과 다른 미래들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대항적 차이의 장소다.

 
영어의 제국, 나, 그리고 세계문학 - 발표자 : 영어영문학과 손혜숙 교수
“모국어는 당신의 피난처. 집에 있는 것이지요. 진정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지요.” 한인 이민 여성인 차학경 작가의 작품 ‘딕테’에 나오는 말이다.
한국어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손혜숙 교수는 21세기의 한국을 영어 식민지라고 말한다. 또한, 언어학적 관점에서 한국은 단순한 식민지가 아닌 자발적 식민지다. 전남대 신경구 교수는 이를 두고 “황국신민 선서보다 더 무섭게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영어제국주의에 종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전반에 영어가 집단 히스테리와 강박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문제 제기 자체를 억압하고 은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어가 이미 우리 사회의 절대적 권위이자 욕망의 대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1998년엔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궁극적으로는 모국어로 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식민의 논리와 언어를 되풀이하고 서구 중심적 시각에 갇히며 문화제국주의를 강화하는 길임을 간과한 것이다. 영어의 세계 지배는 자본주의의 그것과 일치한다. 특히 △언어와 인간을 도구로 보는 점 △창조적 공간이자 문화의 축적이 일어나는 장소를 도외시한다는 점 △효용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점 등에서 그렇다.
손 교수는 이에 대한 대응책을 ‘세계문학’에서 찾는다. 세계문학은 단순히 세계 각국의 문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류의 보편적 양식을 전제하고, 이에 대해 세계가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문학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딕테’가 그러한 예다. 이 작품은 제국주의가 언어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다룬다. 서구의 독자들은 폭력을 겪은 인간의 아픔이 담긴 작품을 읽으며 피식민지의 고통을 공유한다. 이와 같은 ‘나’의 체험은 인류의 공감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에 더욱 가치 있다.

 
학문(장)의 변형, 그리고 ‘협동적’ 대응 - 국어국문학과 천정환 교수 외 1명
천정환 교수와 최병구 연구원은 신자유주의 대학체제 하에서 지난 10여 년간 이뤄진 인문학 연구 환경의 변화를 점검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 방향을 모색해왔다.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연구의 방법론과 내용뿐 아니라, 연구자 문화 및 주체성의 변화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도 진행 중인 학문(장)의 변화는 교육부를 필두로 한 정부와 한국연구재단, 그리고 대학의 공모관계에 의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은 △개인이 써야 할 논문 편수의 증가 △대학의 양극화 △영어제국주의 △학과통폐합 등 무수히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이와 동시에 일부 연구자의 프레카리아트화(불안정한 고용상태)가 가속화됐으며, 생산의 도구로 전락한 연구자 개인은 냉소와 불신을 내면화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방책으로 천 교수는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체제와 학벌체제를 폐기하는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사실상 없으므로, 결국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성찰에 기초한 연대와 협력의 장이다. 이를 위해선 문제의식을 공유한, 교수부터 대학원생까지 수평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 본인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잃고 있는 교수, 폐해가 심각한 시간강사 그리고 대학원생이 문제를 공유하고 공동의 대응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최 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고 자본의 확대만 꾀하는 체제에 반대하며 인문학자와 시민 간 네트워크를 통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인문학협동조합’은 긍정적 신호탄일 수 있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A&HCI 숭배와 인문학의 비극 - 발표자 : 철학과 이종관 교수
훌륭한 인문학은 육신의 언어, 즉 모국어로 성찰할 때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은 △A&HCI △SCI(E) △SSCI 등에 영어논문게재를 강요하고 국제어 강의를 강제한다. 또한, 이를 평가 지표로 삼아 모국어로부터 탄생하는 인문학적 성찰을 봉쇄했다.
이종관 교수는 A&HCI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현 실태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A&HCI는 Thomson Reuters라는 정보서비스 회사의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로 주로 영미권에서 발행되는 학술지를 다룬다. 이곳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을 인문학 학술 성과의 국제적 평가 기준으로 절대화할 근거가 전혀 없다. 하지만 한국 대학은 학술적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아직 없다는 이유로 영미권 학자들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설 기관의 색인을 인문학 가치 판별의 절대 기준으로 숭배하고 있다.
이러한 맹목적 숭배는 90년대 말 한국이 국제금융자본의 조작에 의한 금융시장 붕괴를 겪은 후 국제화라는 신식민주의 전략에 급속히 무너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특히, QS 평가와 같은 평가기관들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인 ‘세계 대학 순위’를 우상으로 여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교수는 한국 인문학이 한계를 극복하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모국어로 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본지 1564호 참고).
영어권 저널에 바치는 학문 연구의 조공화를 지양하는 한편, 서양인문학의 우리말 번역 및 연구 저술 활동을 활성화 할 수 있는 평가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서양인문학을 제대로 된 우리말로 연구할 때 창의적 변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학문 후속세대가 타자를 배려하는 인문학자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권 학자들의 사회적 실천을 요청하는 것을 끝으로 발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