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빅판 김회곤 씨 이야기

기자명 최지석 기자 (jskchoi920@gmail.com)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혜화역 4번 출구에는 큰 패널을 흔들며 우렁차게 구호를 외치는 이가 있다. 지난 8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의 이름은 김회곤. 많이 추워진 날씨에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목청을 높이며 혜화역을 지나는 수백 명에게 빅이슈를 팔고 있다. 절망뿐이었던 삶이 빅이슈를 통해 희망이 보이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그를 만났다.

 지난 6일 오후 5시, 잡지를 구매하는 손님과 짧은 담소를 나누고 있던 김 빅판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그렇게 잘 팔리지 않네요.” 웃으며 말을 건네는 그에게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식 판매 시작 시간은 오후 2시지만, 김 빅판은 주로 오후 1시에 출근해 판매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에 직장인과 대학생이 몰려 잡지 판매율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김 빅판의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 7시에 기상해 빅이슈 본사에 들러 판매에 필요한 잡지를 구매한 후 혜화역에서 판매를 개시한다. 그렇게 오후 10시 반 정도까지 판매할 경우 보통 10권의 잡지를 팔 수 있다. 한 권의 잡지를 팔아 얻는 수익이 2500원이고, 이 중 절반은 빅판 수칙상 저축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하루에 약 13000원씩을 버는 셈이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20권 정도씩 파는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하루 수익은 25000원이다. 차비와 밥값을 제외하면 그에게 남는 돈은 얼마 없다. 운이 나쁘면 하루에 두 권을 판매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다. “빅판을 시작했다고 생활이 여유로워진 것은 아니에요.”

빅판, 꿈을 되찾다
 그럼에도 그가 빅이슈 판매원으로 계속해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빅판은 “직접 돈을 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답했다. 노숙인으로 지내던 과거에는 무료 급식소와 지하철역을 전전했다. 비교적 많은 나이와 노숙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마땅히 일자리를 구할 수도, 구할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지위가 바닥까지 추락한 거잖아요. 그 당시에는 아무런 희망도 생각도 없었어요.” 그는 처음에는 빅이슈에 들어오는 것조차 망설였다고 한다. 일하지 않고 지내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도 하고, 빅판으로 서는 것 자체가 자신이 노숙인이었음을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작한 이후에도 처음엔 입이 잘 떼어지지도,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3개월째인 지금은 빅판으로 일하게 된 것이 감사하다. “제가 버는 돈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거죠.” 빅이슈는 그가 삶을 이어갈 중요한 이유가 됐으며, 더 나아가 자존감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그에게는 꿈이 생겼다. 빅판 생활을 통해 돈을 모아 대명거리에 가게를 차리는 것. 노숙인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때는 정말 꿈조차도 불명확했지만, 빅판이 되고 나서는 꿈이 확실해졌어요. 언젠가는 이 거리에 제 가게를 차리고 싶어요.”

구걸이 아닙니다. 일하는 중입니다.
 오후 6시 20분 즈음, 잡지 한 권이 팔렸다. 잡지를 건네고 거스름돈을 주는 그의 표정에서 웃음이 한참 동안 가시지 않았다. “손님 한 분 한 분이 소중하죠.” 이전 손님이 다녀간 지 1시간쯤 돼서야 한 권이 팔린 상황이 아쉬울 법도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잡지의 판매량보다는 잡지를 사며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몇몇 손님들은 정기적으로 그를 찾아와 안부를 묻기도 한다. “잡지의 내용에 관해 얘기하기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물어보기도 하죠.”  
 그러나 그는 종종 손님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할 때가 있다. “잡지가 아니라 저를 보고 구매하시는 분이 많아요.” 여전히 빅이슈를 사는 행위를 ‘자선’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빅판은 엄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빅이슈를 판매하는 행위는 구걸이 아니라 일이에요. 그래서 독자분들이 구매하실 때에도 잡지 자체의 질을 보고 구매하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빅판은 잡지를 판매할 때 직접적으로 구매해 달라는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하는 등 빅이슈를 구걸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돼있다. 빅판들이 자립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추고 일을 한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힘듦을 지탱하는 빅이슈라는 ‘희망’
 오후 10시, 김 빅판이 퇴근하는 시간이다. 추운 날씨에 9시간을 서서 일한 그의 얼굴에 피로가 묻어났다.  “이 정도는 기본이죠. 대부분의 빅판 분들은 하루에 10시간씩은 파시는 걸요.” 몸을 혹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다.
 하지만 그도 힘이 빠질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무관심이다. 김 빅판이 느끼기에 지나가면서 빅이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소수다. “관심만 보이고 지나가시는 분들은 나중에라도 읽으실 수 있기 때문에 희망으로 보여요. 하지만 눈길조차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힘들 때가 많아요.”
 무관심과 추위 속에서 9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은 ‘희망’이다. “절망밖에 없던 삶에 희망이 생기니까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고요.” 빅이슈가 아니었다면 노숙인 생활을 할 때의 절망감을 씻어버리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어떤 일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것 같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 것. 빅이슈가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예전엔 삶에 여유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제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 저는 남을 생각할 여유가 생기고, 꿈을 꿀 수도 있게 됐죠.” 노숙인의 무기력함을 버리고 꿈을 향해 전진하는 그가 다시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