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도희 기자 (nico79@skkuw.com)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출국’과 같은 노래로 우리에게 알려진 가수, 하림. 그는 요즘 부주키나 드렐라이어와 같은 외국의 전통 악기들을 연주하고, 몽골의 후미 창법을 소화하며 월드뮤직의 세계에 정차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의 화랑 같은 ‘아뜰리에오’ 사무실에서 전날 ‘하림과 집시의 테이블’ 공연을 마친 그를 만났다.
 
▲ 정현웅 기자 dnddl2004@skkuw.com
 
하림에게 월드뮤직이란 무엇인가.
사실 월드뮤직은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들다. 다만, 나는 ‘루트음악’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고 싶다. 루트음악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으나 그 민족의 ‘뿌리’가 담겨있고, 부르는 이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말한다. 흑인의 블루스나 아르헨티나의 탱고처럼 일정 시간 동안 발생했던 특정한 사건에서 유래한 음악이 루트음악이다. 이러한 루트음악에 기반한 퍼포먼스와 그것이 발전한 형태, 이것이 바로 월드뮤직이다. 예컨대 현대화된 블루스, 퓨전 탱고, 우리나라의 사물놀이까지도 월드뮤직의 범위에 들어간다. 결국 월드뮤직은 장르가 아니라 민족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현상인 것 같다.
 
월드뮤직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느 날부턴가 음악이 상업화돼, 음악에서 옛날의 ‘이야기’가 사라졌다. 원래 가요를 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이 사실이 안타까웠고, 월드뮤직에 저절로 관심이 갔다. 시작은 우연한 아일랜드 여행에서였다. 아일랜드는 대중가요보다 전통음악 혹은 전통음악이 발전된 퓨전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다. 펍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왜 우리나라는 이 정도로 우리 고유의 음악을 즐기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는 ‘나도 음악을 산업으로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번졌고 월드뮤직을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월드뮤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도 의의를 두는가.
딱히 월드뮤직을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은 없다. 내가 하는 활동에서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다. 세상의 흐름을 예술이라는 시각으로 표현할 뿐,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는 예술가는 별로 없다. 나는 단지 얘기해 주고 싶을 뿐이다. 요즘엔 아무래도 삶이 팍팍하기에 새롭고, 순수한 음악인 월드뮤직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집시의 테이블’ 공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2010년 내 작업실을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오픈하고 미술, 음악 등 예술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문화기획사 아뜰리에오이고 집시의 테이블은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다. 카페에서 취미로 프랑스 ‘집시 스윙’을 연주하던 ‘집시앤피시오케스트라’에게 음악과 담소가 함께하는 이 테이블의 분위기를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 공연 하자고 제안했다. 집시라는 컨셉은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위한 장치다. 집시는 정착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민족으로 쾌활하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다. 프랑스 외에 아일랜드, 스페인, 그리스 등 멤버가 좋아하는 지역의 음악을 ‘집시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 아래 엮을 수 있었다.
 
유럽 외에 또 다르게 관심 있는 지역이 있는가.
요즘은 아랍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다. 아랍 음악이 워낙 알려지지 않아 궁금하기도 했고, 같은 아시아 지역이다 보니 우리나라 국악이랑 닮은 점도 있다. 그래서 작년엔 퓨전국악밴드 ‘고래야’와의 합동 공연으로 아랍음악과 국악을 연결시켰었다. 또 매년 중앙아시아에 가서 유목민의 음악을 즐기고, 배워 온다. 오랫동안 정주생활을 해온 우리에게 몽골의 유목 문화는 낯설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만국공통어기에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된다. 또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들고, 수익금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기타를 보내는 ‘Guitar4Africa’ 캠페인을 아뜰리에오에서 하고 있다.
 
각 나라의 악기를 빼어나게 소화하는데 독학인가.
유튜브에 찾으면 다 나온다.(웃음)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최근에는 *반도네온을 연습하고 있다. 건반이 높낮이 순서로 있는 게 아니라, 키보드처럼 여러 군데 산재하기 때문에 엄청난 두뇌회전을 필요로 한다. 악기를 배울 때는 곁에 끼고 사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여행 갈 때도 악기를 한 보따리씩 챙겨 간다.
 
앞으로의 계획은.
오랜만에 곡을 썼다. ‘그리운 노래 아리오’란 노랜데 아리랑을 변주해서 만든 노래다. 아리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님을 그리는 노래이지 않나. 사고도 있었고 우리가 그리워야 할 대상이 많아진 올 한 해, 예술가로서 미안함을 달래고자 만들었다. 오랫동안 앨범을 내고 있지 않은 상태에도 작은 위안이 됐다. 그 외 집시와 테이블이나 Guitar4Africa 공연 같은 아뜰리에오 활동은 내년에도 계속 할 예정이다.
 
*반도네온=아르헨티나 탱고에 쓰이는 아코디언과 같은 족의 악기. 네모난 모양의 긴주름상자의 양 끝에 단추식의 건반을 갖추고 손목을 통해 악기를 떠받치는 가죽 밴드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