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과의 동행 - 힙합 1세대 '가리온'

기자명 정혜윤 기자 (hyeyoun1130@skkuw.com)

2014년은 ‘힙합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힙합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색깔 없는 랩이 음원차트를 점령한 오늘, 오직 한글로 된 가사로 우리나라의 서정성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힙합 듀오가 있다. 바로 한국 힙합 1세대이자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이라 불리는 ‘가리온’이다. 작년 겨울, 콘서트 준비로 바쁜 그들을 망원동 피브로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 힙합 듀오 '가리온'의 나찰 / 정현웅 기자 dnddl2004@skkuw.com
▲ 힙합 듀오 '가리온'의 MC메타 / 정현웅 기자 dnddl2004@skkuw.com
 
힙합에 대해 얘기할 때 언더그라운드가 빠질 수 없는데,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란 무엇인가.
나찰 : ‘언더그라운드’는 어떠한 사람의 의견도 반영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언더그라운드를 ‘메이저’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 가수가 방송에서 ‘저는 언더그라운드 출신이에요’라고 소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들을 ‘언더’라고 하면서 메이저에서도 안 하는 유치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에서 생겨난 현상이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시작한 계기와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가리온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한데.
나찰 : 90년대에 ‘듀스’나 ‘업타운’ 같은 힙합그룹이 있었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힙합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의 음악은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했을 뿐 본인의 음악적 색은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가 원하는 힙합을 아무도 보여주지 않아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가리온을 시작했다. 그래서 우린 어딜 가도 가리온은 언더그라운드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본인이 언더그라운드라고 자부할 때는 본인 스스로가 얼마나 그 태도를 망가뜨리지 않느냐에 달렸지, 외부에서 규정짓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재 활동하는 힙합 뮤지션 중에 ‘JAY Z’는 대중에게 큰 지지를 받지만 우리는 그를 ‘메이저’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꾸준히 그만의 색을 유지하고 대중의 인기를 위해 자신의 태도를 바꾼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다이나믹 듀오’도 누군가에겐 언더그라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피브로사운드
한글만으로 힙합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나찰 : 한글날이 되면 항상 왜 한국말로만 랩을 하냐고 전화가 온다. 그 질문만 16년째다.(웃음) 이유랄 게 없는 당연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말로 랩 가사를 쓰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특이하게 보는 상황이 모순이 아닐까. 외국 힙합 뮤지션들에게 물어보니 미국 힙합퍼는 한국 사람이 영어로 랩을 하는 것은 ‘fake’라고 일침을 가했고, 일본 힙합퍼는 오히려 한글로만 랩이 가능한지 반문하며 부러워했다. 일상적 단어에도 일본식 영어가 많이 들어가는 일본은 일본어로만 랩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서다.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표현인데 우리나라 랩퍼가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런 생각을 가졌다’고 영어로 얘기하는 것은 웃기지 않나. 물론 영어로 랩을 하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멋을 부리려고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하는 것은 싫다.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왜 영어에 빚져야 하나.
 
가리온이 생각하는 다른 힙합 가수와 구분되는 가리온만의 ‘swag’는 무엇인가.
MC 메타 : swag 자체가 힙합 단어로, ‘진실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자신을 꾸미는 것’을 뜻한다. 예전엔 힙합 정신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는데 가리온의 힙합 정신은 ‘태도’에 있다. 초심과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하는 태도. 이와 더불어 나이가 들면서 생긴 여유로움이 우리가 가진 swag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찰 : 우리는 한 번도 창피한 가사를 쓰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비트에서 힙합을 한 적이 없다. 그런 것이 독창성이 돼 우리만의 색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피브로사운드
독특한 비트와 가사로 극찬 받는데 가리온 음악의 원천은 무엇인가
MC 메타 : 뉴욕에서 힙합을 직접 느끼고 돌아와 힙합을 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음반이나 뮤직비디오 같은 간접 경험을 통해 힙합을 알아간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이 모두 동기가 된다. 처음 힙합을 듣고 이 뮤지션의 다른 음악은 무엇인지 쫓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랩퍼들의 플로와 신선한 곡을 계속 알아가고 있다. 힙합은 퓨전이나 콜라보 하는데 굉장히 유연하고 혁신적인 음악이다. 그만큼 장르의 다양성이 무궁무진해 항상 새로운 맛을 준다. 또 랩퍼들의 이야기가 우리 삶에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respect’하는 MC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외치면, 우리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그들은 다시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다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나찰 : 우리는 힙합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구현하고 싶다.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 비트, 플로가 생겨나고 있지만 90년대 힙합에서도 새로운 영감을 얻고 여러 가지를 꿈꾼다. 시시각각 새로운 것이 등장하기에 영감에 대해 고민하느라 파리 날릴 시간이 없다. 지금의 힙합은 스타일 전쟁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선 대중성 있는 음악, 특히 ‘발라드 랩’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된다.
나찰 : 대중성 있는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힙합 장르의 재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던 사람들이 힙합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들이 언더그라운드까지 넘어오게끔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요새 음원차트를 점령하는 힙합은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랩이 대부분이다. 우리라고 사랑 노래를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다만 힙합의 핵은 그것보다 더 리얼한 것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발라드 랩은 누구나가 다 공감할 수는 있지만, 예술성은 없고 쉽게 쓸 수 있는 가사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가사를 쓸 때 진지한 노력을 하는지 모르겠다. 요새 친구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swag인데 그런 발라드 랩은 한마디로 swag가 없다. 그래도 최근 힙합퍼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5,6년 전만 해도 힙합이 뭔지 몰랐던 사람들이 이제는 가사에 집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가사는 예술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에 대한 표현이 활발히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힙합 디스전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유독 한국에서 디스전이 있을 때마다 ‘유교 힙합’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많다.
MC 메타 : 일단 디스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정서 차이 때문에 안 된다. 미국 힙합씬을 보면 배틀을 통해 서로의 기량을 자유롭게 주고받는다. 서로 놀리고 되받아치며 농구 게임처럼 가볍게 즐기는 게 디스의 핵심인데, 사실상 우리나라는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블랙 코미디나 난센스를 던진다고 받아주는 사회가 아니지 않나. 분명히 표현의 자유에 제약이 있는 나라고. 그래서 ‘오픈 마이크’를 통해 단계적으로 랩 배틀을 시작했다. 2주마다 일반인들이 비트에 맞춰 자유롭게 얘기하고, 그게 배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했다. 2002년에는 ‘크레이지 엠씨 메타’를 진행하면서 좀 더 형태를 갖춘 배틀을 만들었고, 쇼미더머니 등을 통해 프리스타일 랩 배틀 시스템이 구축됐다. 하지만 control beat 대란 때처럼 서로의 치부를 들춰내기 바쁜 게 아직 우리 현실이다. 친구 사이에도 쿨하게 욕하고 받아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선 건전한 디스전이 일어날 수 없다.
 
래퍼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향후 계획은.
MC 메타 :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는 고민하지 말고 놀며 즐기라고 전하고 싶다.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MC들 중에는 돈도 많이 벌고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보며 따라가다 보면 힙합이 힘들어진다. 그냥 사람들 앞에서 랩하고 호응 받는 상황 자체를 즐겼으면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타가 될 수 있는 거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취미로 랩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찰 : 앞으로 가리온 타이틀을 붙인 앨범이 계속 나올 것이고 공연 무대도 많이 설 예정이다.
 
  ⓒ피브로사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