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디자이너 김영진 인터뷰

기자명 이다빈 기자 (dabin@skkuw.com)

 

직선과 곡선의 아름다운 조화로 우아함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옷, 한복. 하지만 거추장스럽다며 옷장에 접어둔 채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 이러한 한복을 21세기에 맞는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고유의 한국적 정서를 간직한 전통한복은 물론, 일상복으로 재해석한 패션한복까지 다양하게 한복을 짓는다. 유난히도 춥던 날, 따스한 햇살 한줄기가 내리쬐던 한남동 ‘차이 김영진’ 매장에서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을 만났다.

 

연극배우, 해외 명품 브랜드 의류팀장, 아트 컨설턴트… 이름 앞에 ‘한복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붙기까지 걸어온 길들이 매우 화려하다.

대학시절 나는 ‘우리극연구회’라는 거리패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였다. 그 시절엔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판소리, 동래학춤, 봉산탈춤과 같은 ‘우리 것’을 배우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생겼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통찰력도 생겼다. 더불어 연극은 늘 내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나는 연출을 하는 일에만 그치지 않았다. 직접 의상이나 소품을 만들었고 여러 작품을 찾아 읽으며 인문학 공부도 했다. 연극배우를 그만 두고, 우연한 기회에 해외 명품 브랜드의 슈퍼바이저로 일하게 됐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제품 판매에서부터 고객 관리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선정하고 관리하는 일도 하게 됐다.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 보니 힘이 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여러 분야에서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

 

어떻게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됐나.

반드시 한복 디자이너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 어느 하나 내가 의도한 것은 없었다.(웃음)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모든 경험이 연결되는 것 같다. 처음 접했을 때 한복제작은 장인들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담없이 취미생활로 시작했는데 한복을 깊이 공부할수록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복도 엄연한 패션인데 왜 이걸 장인의 영역으로만 제한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내가 공부했던 모든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이 김영진’에 이어 세컨브랜드 ‘차이킴’을 새롭게 오픈했다.

차이 김영진은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다. 모든 고객에 맞춰 일일이 전통한복을 맞춤 제작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입던 전통 속옷인 단속곳부터 치마, 저고리까지 일일이 수제작한다. 이렇게 늘 사람에 맞춰 전통한복을 제작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팔다리가 잘린 한복디자이너가 된 것 같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은데 전통이라는 굴레에 묶여버렸다. 전통의 틀을 깨고 현재를 살아가는 김영진이 디자인한 새로운 패션한복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무모하게 도전했다. 그 결과 ‘레디 투 웨어(ready to wear)’, 기성복 브랜드인 차이킴이 등장했다.

 

▲ '차이킴'의 대표적인 철릭원피스

차이킴만의 대명사, 철릭원피스를 소개해달라.

철릭이란 고려시절부터 문무백관들이 입던 관복이다. 철릭 위에 허리치마를 두르는 철릭원피스는 철릭의 현대판이다. 특히 철릭 중에서도 허리 부분에 선이 둘러져 허리가 강조된 요선철릭에서 영감을 받았다. 주름이 있어 활동성이 편한 요선철릭은 남자들이 입던 옷이었는데, 오히려 나는 ‘여자들이 입으면 더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철릭에 원피스를 접목했다.

 

차이킴의 컨셉트가 유랑인 점이 특이하다.

사람은 어느 한 곳에 머무는 순간 욕심이 피어난다. 패션도 똑같다. 패션은 계산적이거나 물질적인 도구가 돼선 안 된다. 그래서 선택한 탈출구가 유랑이다. 간단하고 편한 차이킴의 옷은 자유롭게 떠돌아야 하는 유랑자를 위한 옷이다. 유랑의 컨셉트는 디자인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삼청동에 본점을 둔 채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랑매장을 연다. 여태껏 부산 가나아트갤러리, 제주도 모루 농장, 청담동 무이무이 등을 방문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인생을 볼 수 있었다.

 

차이킴이 추구하는 한복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접목은 무엇인가.

시대는 변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다. 예식장은 흰색이고 파스텔 계열인데,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형형색색의 전통한복을 입고 식을 올리는 것은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반기를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레이스와 시스루를 한복에 덧대고 새로운 실루엣을 치마라인에 넣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한복 고유의 한국적 아름다움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안고름은 항상 빨간색이며 직배래 소매와 항아리 치마라인을 유지한다. 한복의 전통은 현재의 상황에 맞게끔 변해야 하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

 

한복디자이너로서 철학이 있다면.

소재다. 소재를 보고 디자인을 하지, 디자인을 하고 소재를 찾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소재가 최우선이다. 한복은 단순히 보이기 위한 파인아트(fine art)가 아니다. 사람이 입는 것이다. 나는 화학섬유나 재생섬유를 소재로 만든 옷을 입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은 다른 사람도 입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린넨, 오가닉, 면, 실크와 같은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한다.

 

▲ '차이 김영진' 매장 내부 드레스룸 사진/ 이다빈 기자 dabin@skkuw.com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차이킴의 옷은 10만 원대부터 50만 원대까지 가격대가 굉장히 다양하다. 비싸다면 비싸고, 싸다면 싼 가격이다. 가격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도 대학생 때는 10만 원 이상의 옷을 사본 적 없다. 매번 제일평화시장이나 동대문을 방문해 1~2만 원짜리 구제 옷을 사서 입었다. 하지만 비교 대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차이킴은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 쓰는 고급 원단과 레이스를 사용하며 우리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는다.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몇 십만 원 이상’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매장을 운영하면서 단골손님도 많이 생겼을 것 같다. 특별히 기억나는 손님이 있나.

줄리아드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친구가 기억난다. 한복을 입고 연주회를 열고 싶다며 매장을 찾았다. 자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한복을 맞추는 내내 ‘정말 잘 배운 친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었고, 가격을 깎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돈이 많은 손님일수록 비싸다며 깎아달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장학금을 받으며 외국에서 학교 다니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공연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겠다고 했다. “자신과 연주를 위한 옷이기 때문에 혼자 마련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던 이 친구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 한복의 가치를 단순히 가격으로 판단하지 않은 친구다. 항상 마음 깊숙이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복디자이너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이태리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공항을 도착하자마자 보인 창고에는 이태리 명품브랜드가 빼곡했다. 그 브랜드가 이태리를 대표해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100년을 넘은 역사를 가진 패션브랜드가 없다. 차이 김영진, 차이킴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 지금 세대에 그치지 않고 역사성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자식에게 가업으로 물려주는 것도 방법 중 하나지만 내 자식은 이 분야에 재능이 없다.(웃음) 그래서 후배양성에 힘쓰고 있다. 앞으로 전시도 많이 열고 새로운 예술영역에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우리 브랜드가 특별함과 차별성으로 똘똘 뭉쳐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꼭 방문하는 곳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