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피부 속에 분포하는 감각점은 인간이 따뜻함, 차가움, 압력, 고통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를 각각 온점, 냉점, 압점, 통점이라 한다. 봄날의 따스함, 꽃샘추위의 쌀쌀함, 포옹할 때의 알맞은 압력을 느끼는 것은 모두 감각점의 소관이다. 흥미로운 것은 온점과 냉점과 압점이 받아들이는 감각이 강해지면 그 감각을 고통으로 느낀다는 점이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요컨대 피부가 느끼는 모든 감각은 극단에 이르면 고통이 되어 통점에 이르고, 이 때문에 몸이 안전하다는 것.

고통을 느끼는 단위를 ‘국가’로 설정한, 내가 아는 한 가장 인상적인 철학자는 토마스 홉스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이기 때문에 인민이 주권을 왕에게 양도하여 국가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으로 표상된 근대 국가는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는 자연상태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립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에서 리바이어던의 머리는 절대군주의 형상이고, 몸은 군주만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안전이 보장되리라 믿는 빽빽한 군중의 형상이다.
정치 철학에 대해 논할만한 능력이 나에게 턱없이 부족함에도 감히『리바이어던』을 운운한 까닭은, “리바이어던이라는 개체는 과연 고통에 반응하는가?”라는 의문이 지난 일 년간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백 아흔 다섯의 세포가 죽었다. 아홉 세포가 아직도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따듯하고 차갑고 눌리는 정도의 감각이 아니다. 극단에 이른 고통이다. 그러나 리바이어던의 얼굴은 뻔뻔하게 고개를 돌렸고, 이를 통해 자연 상태의 악무한으로부터 지켜주겠다던 호언장담이 끝내 허풍에 불과함이 다시 한 번 밝혀졌다.
허울뿐인 두뇌(그들은 자신이 재난을 컨트롤하는 중심이 아니라고 부인한 지 오래다)는 무심(無心)했으나 죽어간 세포들과 같은 처지였던 평범한 사람들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국가를 개체에 빗대는 홉스의 비유를 가져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통점들’이라고 불러야 옳다. 유명무실한 머리가 아닌, 통점들 때문에 공동체의 안전이 가능한 것이다.
통점에서 꽃이 핀다. (홍은택) 바야흐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하는 계절, 봄이다. 정확하게 한 달 뒤 오늘은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가 절대 외면하지 말아야 할 사건이 벌어진 지 꼭 일 년째 되는 날이다. 성균관의 곳곳에서, 무수한 통점이 끝내 꽃피리라고, 나는 믿는다.
▲ 황재민(국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