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지원 기자 (wontheph7@skkuw.com)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열정페이’ 논란은 더는 특정 업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기업부터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인턴’이라는 이름 아래 바쁜 생활을 보내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인턴들의 상황에는 도제식 시스템이나 관행이 지배해 온 일부 문화산업과는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그들의 근무지는 비교적 근로조건의 표준이 자리 잡고 법률상 노동자들이 보호받아온 곳임에도 불구하고 인턴의 처우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현행법에서 인턴은 법률 용어가 아니다. 흔히 ‘수습’과 비슷한 의미로 여겨지지만, 정의상 수습은 정식 채용 후 직업교육을 받는 과정을 의미하므로 통용되는 인턴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 현장에서는 ‘인턴은 근로자가 아니라 교육이나 경험을 위해 온 것이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해외 법률의 인턴 정의를 참고할 때, 인턴이 △고용주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거나 △기존에 정규직 직원이 하던 업무를 수행하거나 △교육적 목적이 아닌 잡무·실무를 맡는 등의 경우에는 고용된 노동자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법에는 인턴 노동자가 설 자리가 없다. 한국의 근로기준법 제2조 1항 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기능의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이들을 혹사하거나, 기능 습득과 관계없는 업무에 종사시키지 못하도록 할 뿐 무급 인턴의 근로조건에 대한 규정은 없다. 채용공고에서 ‘무급 인턴’임을 밝히기만 했다면 인턴이 교육보다는 실질적 업무를 맡았더라도 임금을 요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또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인턴들은 금전 외적인 부분에서도 기존 법령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 직장 내의 다양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령들이 ‘임금’을 고용계약의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기준을 가진 미국에서는 법원이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한 무급 인턴의 소송을 기각한 적이 있다. 당시 법원은 기각 사유로 “무급 인턴은 정규 근로자가 아니기에 직장에서의 차별 행위를 처벌하는 시민평등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사회 각계로부터 비상식적 판결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무급인턴도 법 안으로?
위와 같은 논란을 겪고 난 후 미국 사회에서는 노동자로서 인턴의 법적 지위를 확실히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던 기존 법안을 확장해, 인턴까지 법의 보호망 안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국은 인턴십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었음에도 그간 지나치게 유연하게 적용되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최근 인턴들의 집단 소송 결과는 해당 가이드라인 적용에 중요한 판례를 남기고 있다. 패션잡지 ‘보그’, ‘베니티 페어’, ‘W’ 등을 소유한 거대 출판기업 ‘콘데 나스트’ 가 자사를 위해 일했던 무급 인턴 7500여 명에게 소송 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미 연방 법원은 콘데 나스트 사에 58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인턴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그들을 보호받게 하려는 노력은 미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2008년 제정된 브라질의 ‘인턴십 법’은 인턴십의 목적을 교육으로 한정하고 참가자가 △정규 교육과정에 있을 것 △학생·학교·인턴십 기관이 약정서를 체결할 것 △약정서 내용과 실제 활동 내역이 일치할 것 등을 의무화했다. 근무조건이 이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인턴이 아닌 정식 근로자로 대우해야 한다.
한국에도 인턴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3년 8월,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은 ‘무임금 근로종사자’를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 의원 사무실은 이 개정안이 “근로기준법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인턴들을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 보완책”이었다고 밝혔다. 입법부 차원에서 무급 인턴의 법적 지위를 확립하려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고, 내용 면에서도 무급 근로를 법적으로 인정 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했다.

 

▲ 청년유니온에서 시행 중인 체불임금 캠페인 포스터 /ⓒ청년유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