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이 닿기 전에는 한글은 다만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손이 닿기 전에는 한글은 다만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
  • 정혜윤 기자
  • 승인 2015.03.15 16:52
  • 호수 15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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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과의 동행-강병인 캘리그라퍼

 

▲ 강병인 캘리크라퍼가 작품 ‘봄’의 제자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정현웅 기자 dnddl2004@skkuw.com

길을 거닐다보면 어디에서든지 감성 넘치는 손글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꽃’이라는 낱말에선 싱그러운 봄내음이 불어오고, ‘청춘’이라는 글자는 여리지만 뜨거웠던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2000년 초, 한국에 처음 캘리그라피를 소개하고 글씨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의 다정다감한 교감을 시도해온 사람이 있다. 순수와 상업서예를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캘리그라퍼 강병인을 만났다.
 
어린 시절을 산골 오지에서 보냈다. 붓을 잡게된 것은 언제인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서예반을 개설하셨어요. 그 때 처음 서예를 시작하게 됐는데 붓을 잡고 먹을 가는 시간이 즐거웠죠.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 덕분에 붓을 계속 잡았고, 학교 대표로 서예대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서예가라는 꿈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교과서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알게 된 후에요. 추사 김정희 선생이 한문 서예의 대가라면 저는 한글로 이름을 남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고, 그때의 다짐을 붙잡기 위해 ‘영묵’이라는 호를 지었어요. 영원히 묵과 함께하자는 뜻이죠. 군대에서도 기록병으로 있으면서 계속 먹을 갈았고 한글서예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많이 해왔어요. ‘영묵’이라는 호가 없었다면 지금의 글씨 쓰는 강병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영묵’은 제 호이자, 인생을 좌우한 좌우명이기도 한 셈이죠.
 
▲ 작품 '꽃나들이' /ⓒ강병인캘리그라피 연구소 제공
 
90년대 초반 작가가 캘리그라피 세계에 눈을 떴을 당시 우리나라에는 캘리그라피라는 개념이 없었다. 어떤 계기를 통해 캘리그라퍼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인가.
90년대 초에 일본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활자가 아닌 붓글씨로 쓰인 간판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심지어 식품 포장지 하나하나에도 제품의 성격에 맞춘 서예디자인이 가득했죠. 그것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순수서예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곧바로 돌아와 로고타입을 샘플로 만들어 광고주에게 제안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죠. 그래서 99년도부터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물론 이전에도 MBC나 KBS와 같은 대형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글씨를 써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캘리그라피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는 않았어요. 캘리그라피는 단순히 서예의 한 방법이 아니에요. 서예와 디자인을 융합 및 접목해 새로운 글씨를 탄생시키는 것이죠. 전문 캘리그라퍼를 양성함과 동시에 하나의 직업군으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이 분야를 개척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여전히 캘리그라피를 서예의 영역에서 배제한 채 근본 없는 글씨라 보는 일부 서예가들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잡지에서 서예가분이 기고한 글을 본적이 있어요. 소위 캘리그라퍼들이 서예를 망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점에서 ‘법고창신’의 정신이 반드시 요구된다고 봐요. ‘법고’가 전통에 대한 이해라면 ‘창신’은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접근과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죠. 즉, 전통서예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되 그 뒤의 한글 꼴을 만드는 노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가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캘리그라피 초창기에는 정형화된 한글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이 생동하는 모습을 글씨에 담으려고 하니 저것이 회화지 어떻게 서예냐는 비판이 일었어요. 한문은 달 월을 쓸 때 달의 모양을 표현해도 되고 한글은 안 된다는 말인데 왜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한자가 보이는 것을 문자화했다면 한글은 소리를 문자화한 것인데 말이죠. 한글의 모음이 자연과 인간에서 따온 것인 만큼 한글에 자연과 사람이 모두 드러나며 한자와 마찬가지로 이 둘의 조화로움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서예가의 우려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창신을 가로막는 비판은 용납할 수 없어요.
 
업계 최고의 캘리그라퍼로서 상업서예와 순수서예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디자인 서예를 할 때는 철저하게 기업의 철학을 반영해줘야 해요. 책을 예로 들자면 그 책을 쓴 작가, 만드는 출판사,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생각해야하죠. 그것에 대한 이해나 감정이입 없이는 제대로 된 글씨를 쓸 수 없어요. 최종 수용자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떻게 글씨를 이해하고 공감할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다정다감한 소통’이에요. 작가의 일방적인 정보 주입, 무조건적인 홍보가 아닌 서로가 교감할 수 있어야 하는 글씨여야 한다는 것이죠. 반면, 순수서예는 글귀 및 내용에 대한 작가 개인의 공감과 생각이 중심이 돼요. 똑같은 단어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잖아요. 작년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의 봄날은 너무나도 아프고 슬픈 봄날이었듯 말이죠. 그래서 그런 ‘봄날’을 쓸 때는 제가 생각하는 슬픔이 드러나야 해요. 어느 서예든 글귀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감정이입이 충분이 됐을 때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어요.
 
▲ 드라마 정도전 캘리그라피 /ⓒ강병인캘리그라피 연구소 제공
캘리그라퍼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2006년에 쓴 ‘참이슬’이에요. 이 작품으로 제 이름을 알렸죠. 사실 참이슬과의 인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거슬러갑니다. 당시 집이 가난해 졸업여행을 갈 수 없었어요. 벽지시골학교 아이들을 선정해 3박 4일간의 서울여행을 보내준 후원회사가 바로 ‘진로’였어요. 마음 속에 항상 그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 컸는데 그 회사를 대표하는 글씨를 쓰게 됐네요. 묘한 인연이죠. 드라마 ‘대왕세종’의 글씨를 쓴 것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세종은 한글뿐 아니라 문화, 과학,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분인데 그런 그의 삶을 ‘대왕세종’이라는 글씨 안에 다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어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죠.
 
2010년부터 실시한 ‘한글세움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달라.
활자로서의 한글은 정보전달의 역할만을 수행해요. ‘꽃’이라는 글자 자체에는 예술적 가치가 없지만 서예를 바탕으로 ‘꽃’을 쓰면 활기찬 봄기운이 느껴져요. 초성인 ‘ㄲ’이 잎이나 꽃봉오리가 되고 중성 ㅗ가 가지가 되고 종성인 ㅊ이 땅이 되는거죠. 이것을 바로 천, 인, 지라고 해요. 하늘과 사람과 땅이라는 거죠. 이렇게 자연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한글을 조각물로 세워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한글세움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습니다. 평면인 제 글씨를 조각가들에게 맡겨 광화문이나 인천공항 같은 곳에 20층 높이로 세워보려고 해요. 아직은 시작단계지만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 작품 '봄날 긴그리움' /ⓒ강병인캘리그라피 연구소 제공
강병인 캘리그라퍼가 보는 좋은 글씨란 무엇인가.
좋은 글씨는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들어간 글씨에요. 생각 없이 쓴다면 어느 순간 남의 글씨를 베끼고 있을지 몰라요. 또한, ‘학예일치’라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말처럼 기술을 연마함과 동시에 내적인 지식을 끊임없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글씨라는 것은 인간과 자연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이 글씨에서 드러나고 오늘 자연에서 만났던 새 한 마리의 표정 하나가 글씨 속에 느껴지는 것이니까 말이죠. 자기 노력이 있어야만 기운 생동한 글씨를 쓸 수 있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보다 한글의 산업화를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사람들은 ‘한글사랑’을 외치면서도 정작 한글로 된 티셔츠나 한글로고가 있는 상품은 잘 사용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패션디자이너, 조각가와의 협업을 통해 한글의 멋을 알리고 싶어요. 한글은 공기나 물과 같아요. 가볍게 여길 수 있지만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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