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스크린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그 많던 스크린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 정정락, 박범준 기자
  • 승인 2015.03.22 12:47
  • 호수 15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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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러왔다. “오빠 영화 뭐 볼래? 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은 이제 내렸나보네? 보고 싶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열한 시랑 오후 세시에 이미 상영이 끝났네!” 내가 답했다. “음, 그럼 오빠 <킹스맨> 봤어?”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데이트다. 커플은 가장 가깝고 편한 시간대의 영화를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 애초에 <개훔방>에 관심이 있었던 이 커플은 누구도 <킹스맨>을 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킹스맨>을 선택했다. 소중한 친구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들르는 극장. 이 극장에서 우리는 진정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일까?

선택한 것일까, 선택당한 것일까?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대학생들이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줄고 있다. 본지가 지난 18일 압구정 CGV의 상영시간표를 분석해본 결과, 총 49회의 상영 횟수 중 77.5%에 달하는 38회가 대형 배급사(해외 배급사 포함)의 영화에 집중돼 있었다. 그나마 중소 배급사 및 *다양성 영화에 배정된 11회의 상영시간도 조조시간이나 막차가 끊기는 늦은 심야시간에 배정돼 있었다.
이에 이동연 계간<문화/과학> 편집위원은 “애초에 멀티플렉스는 다양한 영화를 틀기 위해 스크린을 여러 개로 나누면서 시작된 건데, 사실상 지금은 더 잘되는 영화를 몰아주는 방법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도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줄고 있다”고 비판하며 “예전에는 관객이 영화를 골랐다면 이제는 극장이 관객을 고른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성균인의 목소리가 들려
본지는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우리 학교 학우 4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학우 중 57.1%(237명)는 ‘보고 싶은 영화의 상영관이 부족해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상영되는 영화의 종류가 많지 않아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봐야 했던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9.9%(207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학우들이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봐야 했던 셈이다.
‘다양성 영화의 관람 기회 부족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66.3%(275명)의 학우가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를 침해한다’고 답했다. 반면, ‘별문제가 없다’고 답한 학우는 19.8%(82명)에 불과했다. 과반수의 학우가 상영관 독과점 문제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진 것이다. 특히 ‘별문제가 없다’고 답한 학우의 세 배에 달하는 학우들이 ‘이로 인해 자신의 권리가 침해 받는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학우는 “다양성 영화를 접할 기회가 줄어서 충분히 좋은 영화인데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배정에 불만을 제기했다.
한편, 다양성 영화를 보기 위해 특정 상영관(CGV아트하우스, 서울아트시네마 등의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을 찾아간 학우는 36.6%(152명)로 비교적 그 수가 적었다. 그러나 85.1%(353명)의 학우들이 ‘극장에서 상업 영화와 다양성 영화가 비슷한 비중으로 상영된다면 다양성 영화를 볼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을 찾아갈 만큼 다양성 영화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멀티플렉스에서 다양성 영화를 상영한다면 볼 의향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아대학교 이윤종 교수는 “학생들은 CGV에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편하고, 싸고, 흔하기 때문”이라며 “내 선택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서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라 말했다. 이 편집위원은 “상업영화를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보다는 홍보가 안 된 좋은 영화를 보러 가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 평론가 또한 “좀 발품을 팔더라도 멀티플렉스뿐만 아니라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다양성 극장 등을 찾아가서 영화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달 9일 △민변 △참여연대 △청년유니온이 멀티플렉스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영화관 확 바꿔봅시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청년유니온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
지난해 개봉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리틀빅픽쳐스 배급, 이하 개훔방)은 평단과 관객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대형 배급사의 영화들에 밀려 고전했다. 실제로 개봉 당일 <개훔방>의 스크린 수는 205개로, 다른 대형 배급사들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출발했다. (△<국제시장>(912개, CJ엔터테인먼트 배급) △<기술자들>(529개,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 △<테이큰3>(509개,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급)) 이에 지난 1월 <개훔방>의 배급사 엄용훈 대표는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며 우리 사회에 ‘스크린 독과점’ 논의의 불을 지폈다. 수많은 논쟁 끝에 결국 <개훔방>은 지난달 중순 예술영화 전용관들에서 재개봉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역대 영화 흥행순위는 이러한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역대 흥행영화 순위 20위안에 드는 영화 중에서 15개의 영화가 국내 3대 대형 배급사로 꼽히는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오리온 계열)가 배급한 영화다. 여기에 최근 ‘신흥강자’로 꼽히고 있는 배급사 NEW의 영화와 해외배급사들의 영화까지 포함하면, 역대 흥행영화 순위에 드는 중소 배급사의 영화는 전혀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대기업들이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의 전 과정에 개입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스크린 수와 관객 수 비중은 각각 94.8%, 96.9%로, 우리나라의 영화상영 부문은 사실상 3개 기업의 ‘완전과점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대기업들은 자사 그룹영화의 상영조건을 다른 배급사의 영화에 비해 유리하게 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강화해왔다.
 
멀티플렉스의 갑질에 등 터지는 다양성 영화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일부 멀티플렉스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각각 자사 그룹의 영화인 <광해>(CJ E&M)와 <돈의 맛>(롯데엔터테인먼트)의 스크린 수와 상영기간 등을 유리하게 편성했기 때문이다. <개훔방>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지만, CJ CGV 측은 ‘좌석 점유율 등을 고려해 스크린 지정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장논리에 따른 기업의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멀티플렉스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인한 피해는 중소 제작·배급사와 관객들이 입는다. 우선 일차적인 피해는 중소 제작·배급사가 입는다. 이들이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이를 대중들에게 전달할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카트>(리틀빅픽처스 배급) △<더 테너 : 리리코 스핀토>(박수 엔터테인먼트, 모인그룹 배급) △<조류인간>(루스 이 소니도스 배급) 등은 평단과 관객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스크린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중소 배급사 영화, 다양성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CGV아트하우스와 대명문화공장이 공동배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무비꼴라쥬(현 CGV 아트하우스)가 배급을 결정한 <한공주>의 경우, 멀티플렉스의 도움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했다. 즉, 아무리 작은 영화라 하더라도 플랫폼이 제공되면 충분히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차적인 피해는 좋은 문화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놓친 대중들이 입는다. 최근 저서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에서 한국영화산업의 문제를 진단한 동아대학교 이윤종 교수는 이미 현재 많은 예술영화 전용관들이 대형 멀티플렉스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영화계는 대기업 극장체인이 아닌 다른 소규모 극장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현 상황을 진단한 이 교수는 “이 구조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CGV에서만 영화를 볼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를 침해받게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영화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현재 우리나라의 영화산업 구조는 20세기 초반 미국영화계의 상황과 비슷하다. 미국의 경우 1920년대와 1950년 사이에, ‘빅 파이브’(Big Five : MGM,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워너브러더스, RKO)로 대표되는 대형 영화사들이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독점적으로 맡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CJ와 롯데가 영화 제작·배급·상영을 독점하는 구조와 유사하다. 그러나 1948년 미국 대법원이 ‘파라마운트 판결’을 내린 후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대법원이 대형 영화사들의 독점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미 70년 전에 미국에서 불법이라고 판결 난 것을 우리나라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민사회와 영화인들은 영화산업의 이러한 독점적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9일 시민단체인 청년유니온은 3대 멀티플렉스(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뒤, 한 멀티플렉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한 관계자는 “중소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예매 오픈, 상영관 배정 등 영화홍보와 흥행에 직결되는 부분에서 여전히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입법을 통해 대기업의 독점적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다양성 영화=△다큐멘터리 영화 △독립 영화 △예술 영화 등을 포함한다. 상업 영화와는 반대로 저예산·소규모로 제작되지만, 소재와 장르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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