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학생 자치 기구에 대한 재학생 관심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몇몇 단과대학들은 투표율이 낮아 학생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비상대책위를 꾸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주 학과 개강총회 참석자도 재학생 수의 절반을 밑돌아 그 열기가 예년보다 낮았다. 최근 성대신문이 열독률 하락을 걱정하며, “성대신문, 잘 부탁드립니다.”는 편집장 칼럼을 실은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학생 자치는 불특정 다수의 효용을 늘리는 공공재로 볼 수 있다. 자치활동은 금잔디 광장이나 심산 선생 동상처럼 성대생 누구나 편익을 누릴 수 있고(‘비배제성’), 모두가 공유해도 그 가치가 줄지 않는다(‘비경합성’). 곧 자치활동의 편익은 모두에게 고루 분산되지만, 그 부담은 열심히 참여하는 소수에 집중된다.
이런 까닭에 대부분 학생들은 학생자치에 힘을 보태기보다 무임승차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따라서 내버려두면 학생 자치는 꼭 필요한 수준보다 그 양과 질이 못 미치게 된다. 군대 유지나 등대 운영처럼 정부가 개입하거나, 시민단체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핵심 논거다.
투표행위도 공공재다. 개표 결과가 한 표로 좌우되는 일은 드물기에 자신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굳이 투표장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이를 ‘투표자의 합리적 무관심’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후보자들은 유권자 환심을 사려고 선심공약을 남발하기도 하고, 때론 목소리 큰 소수를 위해 말 없는 다수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포크배럴 사업마저 추진하게 된다.
학생들이 자기 계발과 취업 준비, 때로는 ‘알바’에 몰두하는 것을 나무랄 순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수 학생들이 자치활동을 ‘강 건너 불구경’한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들의 이유 있는 불만과 건설적인 바람이 제대로 수렴되기 어렵다. 교수와 교직원은 학생들의 건전한 목소리(voice)를 들을 수 없고, 숨은 문제점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놓치게 된다. 학교 발전은 차츰 더뎌지고 학생들의 애교심도 덩달아 식게 되어 심지어 후배의 진학을 만류(exit)하는 심각한 상황까지 이를 수도 있다.
학생들의 무관심과 무임승차가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자치활동을 내몰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학교 바깥의 정치 현안 등에 매달리는 소수의 극단 그룹이 자치활동의 중심에 서서 강성 일변도로 치닫는 경우다. 기우가 아니다. 2000년 봄 총학생회가 급진 외부세력의 도움으로 한 달 이상 600주년 기념관을 원천 봉쇄하고 점거 농성을 벌이며 학교의 위상을 바닥으로 실추시킨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 총선에선 중도파가 퇴조한 반면에 극우와 극좌 정당 후보들이 약진했다. 중도 성향 유권자들보다 양극단에 위치한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학생자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방안은 무엇일까. 학생 자치 기구는 중지를 모으고 작은 아이디어라도 실행하는 경로로서 유용성을 입증해야 자생력을 지닐 수 있다. 이젠 온라인ㆍ모바일투표를 도입하고, 사이버 자치공간의 제안과 공론을 활성화해 참여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할 때가 됐다. 욱일승천의 교세에 걸맞게 성대생의 자긍심과 연대감을 북돋우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성숙한 민회로서 풀뿌리 아고라를 가꾸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