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도희 기자 (nico79@skkuw.com)

 

 

마침 비가 왔다. 홍대입구역에서도 한참 걸어야 나오는 주택가 사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골목 끝으로 보이는 노란 벽이 박물관이 거기 있음을 알렸다. 벽에는 노란 나비가 빼곡히 앉아있었다. 그 중 한 나비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자유로운 나비가 되세요.”
 
2012년 5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설립됐다. *일본군‘위안부’ 사건을 기억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내외 시민들이 힘을 모은 결과였다. 박물관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1990년 만들어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운영한다. 정대협은 이외에도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열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쉼터 ‘평화의 우리집’을 운영한다. 또 ‘나비 기금’을 마련해 세계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한다. 박물관 곳곳을 날아다니는 노란 나비는 모든 여성이 폭력과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개짓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전경
 
 박물관의 구도는 독특하다. 지하 1층을 시작으로 2층에 올라 1층으로 나온다. ‘척척척척…’ 철문 뒤로 들리는 군인들의 군홧발 소리가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문을 열면 좁은 길이 나온다. 한쪽 벽엔 끌려가는 어린 소녀들이, 한쪽 벽엔 할머니의 얼굴이 있다. 지옥 같던 세월을 넘어 마주한 두 주인공, 현재와 과거 그 사이로 걸어 나간다. 돌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어느 새 어둠 속이다. 감옥 같은 그곳에선 입장권에 소개된 그날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 나온다. 오늘의 할머니는 ‘배봉기’ 할머니. 할머니는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영상 속에서 할머니는 일본어로 운다.
지하 전시관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면, 2층 역사관은 분노를 자아낸다. 할머니가 그린 위안소 지도, 위안소를 이용했다는 일본군 청년의 일기 등의 증거 자료를 보면 당시 모습이 생생하다. ‘돌격 1호’라고 적힌 당시 사용된 콘돔도 있다. 전시실 중앙엔 한복을 입은 ‘평화를 바라는 소녀상’이 앉아있다. 맨발의 소녀는 가냘프지만, 일본군을 향한 두 눈 만은 매섭다. 박물관에서 가장 슬픈 곳, 추모실엔 할머니들의 이름과 별세 일자가 적힌 벽돌이 쌓여 있다. 아픔이 서려있는 벽돌 틈으로 먼저 온 사람들이 놓고 간 꽃들이 비에 젖어 있었다.
▲ 평화의 소녀상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단지 과거를 들춰내는 곳이 아니라, 현재, 미래까지도 살펴보는 곳이에요.” 이지영 박물관교육팀장은 차분하게 박물관의 존재 의의를 설명했다. 1층 상설전시관엔 오늘날까지도 전쟁에 희생되는 아프리카와 중동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아직도 전시 여성 성폭력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할머니들의 제안에 따라 나비기금이 조성되었고, 이는 콩고민주공화국과 베트남 여성들을 위해 쓰였다.
고통의 시간을 털어놓은 할머니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박물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 정대협이 출범할 때만 해도 아무도 생존자들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듬해 김학순 할머니께서 최초 제보를 해주신 거예요.” 그토록 오래 할머니들을 짓눌렀던 것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는 당시 한국의 풍토가 할머니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기자회견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쟤도 정신대야?” 당시 이십 대였던 이 팀장이 수요시위를 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그 후 언론에 보도되고, 전국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박물관의 설립 장소를 고르는 것조차 사람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원래 독립공원 내에 설립하기로 했던 박물관은 “순국선열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광복회의 반발로 현재의 외진 곳에 위치하게 됐다.
지난 1월 31일 박위남 할머니가 별세하셨다. 2015년 3월 현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생존 할머니들은 쉰 세분이다. 뺏긴 청춘을 그리며 지난 70여년을 고통 속에서 사신 할머니, 할머니들은 노란 나비로 자유롭게 하늘을 나실 수 있을까.
 
일본군‘위안부’= 위안부는 일본군의 범죄를 미화시키는 올바르지 못한 용어다. 정식 용어로는 ‘일본군 성노예’가 맞으며 비판적 의미를 환기시키기 위해 위안부에 따옴표를 붙여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