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영석 기자 (nys2807@skkuw.com)

기나긴 겨울이 끝났다. 이대로 그냥 가기 아쉬웠는지 겨울은 괜히 심술을 부렸다. 지난 일주일은 봄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꽤 쌀쌀했다. 특히 일교차가 무척 컸던 탓에 오전의 햇살만 보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외출에 나선 이들은 오후의 칼바람을 맞으며 후회하곤 했다.

그날은 특히 추위가 심했다.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학교 정문 앞에서 열리던 날이었다. 간담회는 저녁 7시 즈음부터 시작했고, 딱 그 무렵부터 날이 더 심하게 추워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도 되는 듯 입을 굳게 다물기 시작했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조차 ‘정치적’으로 비춰질까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 역시 강추위 속에 서서 간담회를 경청하는 것보다는 따뜻한 술집에 앉아 스트레스 풀기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해한다. 나도 취재만 아니었다면 행사에 참석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은’ 사람들은 많았다. 그날 정문 앞에는 수십 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서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추위만큼은 ‘잊은’ 사람들이었다. 추위에 벌벌 떨던 나는 그들이 신기했고,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1년 가까이 함께 울고, 기억하고, 투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세월호 사건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참사다. 그렇기에 더욱 기억해야한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이지 ‘정치인’들이 아니다. 진실을 요구하고 뼈아픈 과거를 교훈삼아 다시는 아픔이 반복되지 않게끔 노력하는 일에 가치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모순이다. 그만큼 진실에 각박해지고 아픔에 무감해진 세상은,

아직 춥다. 금방금방 잊어버리는 세상이지만, 추위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언제쯤이면 ‘그깟 추위’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