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2005년 겨울, ‘PD수첩’ 한학수 PD를 찾아간 류영준 교수는 이렇게 물었다. “한 PD님, 진실과 국익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이에 한 PD는 1초의 망설임 없이 “진실이 곧 국익”이라고 답했다. 류 교수는 제보를 결심했다. 하지만 진실의 무게는 무거웠다. 류 교수는 ‘PD수첩’ 방송 이후 끊임없는 테러 위협에 시달렸고 병원을 그만두어야 했다.
 
 
내부고발*자의 어제와 오늘
2004년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관련 논문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사건을 처음 PD수첩에 제보한 류영준 교수의 정체가 탄로 났고, 그가 일하던 원자력 병원에는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그를 ‘매국노’라고 욕했다. 하지만 2006년 1월,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가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조작됐고 줄기세포 관련 원천기술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황우석 교수는 교수직에서 파면당했다. 이를 계기로 학계에서는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류영준 교수와 같은 내부고발자들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에 대한 열악한 보호는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만행을 폭로한 박창진 사무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 사무장은 업무복귀 이후 무리한 항공 일정과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음달 10일까지 병가를 낸 상태다.
이에 대해 내부고발자 보호분야의 권위자인 중앙대학교 박흥식 교수는 “내부고발자들이 결국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신고를 하다 피해를 본 만큼 사회는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은밀하고 위대하게, 사회를 바꿔온 양심들
한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들은 어떤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 왔을까? 한국 사회에 공익제보의 중요성을 최초로 알린 사건은 이문옥 감사관의 ‘감사원 감사비리 고발’ 사건이다. 1990년 5월, 이문옥 감사관은 23개 재벌계열사의 부동산 투기행위에 눈 감아준 감사원의 행태를 언론에 제보했다. 이후 감사원과 재벌기업 간의 유착관계가 드러나면서 정경유착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이 높아졌다.
2003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소속 김용환 씨 외 3명이 적십자사의 혈액관리 부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당시 적십자사는 △에이즈 △B형·C형 간염 △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환자 수혈용과 의약품 제조용으로 유통했다. 이들의 제보로 정부는 보건복지부에 혈액안전관리 전담부서인 혈액정책과를 신설했고, 이는 더 안전한 혈액관리 시스템이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2011년에 영화 「도가니」로 다뤄졌던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드러난 배경에도 내부고발자의 제보가 있었다. 2005년, 광주인화학교 교사 전응섭 씨는 당시 “딸의 친구가 행정실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한 학부모의 제보를 듣고 광주성폭행상담소에 이를 신고했다. 일부 가해자들은 첫 판결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이후 사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법정에 서게 됐고, 결국 처벌받았다. 국회에서는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장애인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폐지됐고 형량도 강화됐다.
 
건강한 사회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집단의 비리와 부패 문제는 단순히 해당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리와 부패가 누적되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재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이 누적돼 발생한 인재였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소장 이지문) 유동림 간사는 “세월호 참사는 △선박 증축 문제 △안전규정의 미비 △화물의 부실 적재 등 많은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터진 건데 만약에 그 단계 단계마다 내부제보가 있었다면 충분히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최근 공직사회의 부패척결과 관련한 ‘김영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가장 효율적인 비리척결 수단은 내부고발제도 활성화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을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부정부패를 예방하거나 이미 일어난 부정부패를 세상에 밝히고 근절하는 게 내부고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또 이 부소장은 “현대사회가 전문화되면서 일반인들이 감시할 수 없는 영역들이 많이 있다”며 “많은 조직이 폐쇄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되는 상황 속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조직의 내부자들이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내부고발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부정행위조사관협회(ACFE)가 세계 100개국 1,483건의 부패사례를 조사한 결과, 부패의 최초 적발 경로는 ‘내부제보’가 42.2%로 가장 많았다. ‘관리점검’과 ‘내부감사’는 그 다음으로 각각 16%와 14.1%에 불과했다.
 
 
남이 하면 ‘영웅’, 동료가 하면 ‘배신자’?
우리 사회가 내부고발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조직의 외부에서는 내부고발자들을 ‘용감한 의인’이라며 칭찬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조직의 내부에서는 내부고발자들을 ‘배신자’라 욕하며 따돌린다. 이런 인식차이에 대해 청주대학교 이주희 부교수는 그 원인을 ‘한국 고유의 조직문화’에서 찾는다. ‘서열을 중시하고 의리를 강조하며,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문화’ 때문에 ‘내부고발자들을 ‘조직의 화합을 저해하는 사람들’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부고발자들은 조직으로부터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 내부고발자들은 우선 직장 내에서 △감봉 △면직 △해고 등의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일례로 2009년 5월, 해군 납품 비리문제를 고발한 김영수 해군 소령의 경우, 제보 이후 근무평정에서 최하등급을 받았고 타 부서로 전출되어 사병과 같은 책상을 쓰는 등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았다.
조직 내의 따돌림 같은 심리적인 문제도 있다. 2003년 9월,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관리 부실을 고발한 김용환 씨는 제보 이후 직원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몇 개월 동안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기도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조직과 법정 다툼에 휘말리는 경우다. 내부고발자들은 조직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형사상 고발을 당하거나 ‘비밀유지 위반’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기도 한다. 이는 내부고발자가 인사상의 불이익 조치로 경제적 기반을 잃은 경우에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된다. 2012년 12월,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대선개입과정을 민주당에 제보했던 국정원 직원 정 모 씨는 제보 이후 국정원에서 파면됐다. 게다가 국정원은 정 모 씨 등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을 국정원법(정치관여 금지), 국정원직원법(비밀엄수)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내부고발자 못 지키는 허술한 안전망
내부고발자들은 고발 이후 조직으로부터 막대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지만, 막상 이들을 보호하는 법적·제도적 안전망은 부실한 상황이다. 현재 내부고발자(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공익신고자보호법’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법’(이하 권익위법)등이 있지만, 이 법들이 내부고발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에는 미비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공익신고 보호대상과 관련한 문제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보호대상 범위를 △국민건강 △안전 △환경 △소비자 이익 △공정한 경쟁이라는 5개 분야, 총 180가지의 경우로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기업과 사학비리 관련 공익신고는 보호대상에 포함되지 못한다. 일례로 2012년 9월, 사학비리를 고발한 동구마케팅고등학교 안종훈 교사는 제보 이후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보호요청을 했지만, 권익위로부터 “사학비리신고는 공익신고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요청을 거부당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공익신고 보호대상을 현행 열거식이 아닌 포괄식으로 넓게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현재 권익위에서 진행하고 있는 내부고발자 보호조치마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유 간사는 “권익위에서 부당한 징계행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도 강제성이 없어서 피신고기관에서 이를 안 지키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라며 “오히려 피신고기관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내부고발자 보호 관련 문제 외에도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은 내부고발 신고처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 △익명제보가 불가능하다는 점 △피해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강화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여연대
내부고발자를 부탁해
내부고발자들의 시련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의 피해가 반복된다면 더는 그 누구도 조직의 비리나 적폐를 막기 위해서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해 지난해 11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11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은 ‘공익신고자보호법’과 ‘권익위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익제보인정범위 확대 △공익제보자 보호조치 강화 △공익침해행위에 대한 부실조사 방지 △불이익 조치자에 대한 처벌 강화 △제보자에 대한 보상체계 강화 등을 골자로 한 17개의 개정안(정부제출안 포함)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실 김하룡 비서관은 “기존에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던 ‘김영란법’이 통과됐으므로, 올 4월이나 6월 중에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가 진행될 것”이라 밝혔다.
 
*내부고발=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부패와 비리를 외부에 알림으로써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는 것. ‘공익제보’, ‘공익신고’라고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