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도희 기자 (nico79@skkuw.com)

▲ 일러스트 강도희 기자 nico79@skkuw.com

방 한가득 피규어를 쌓아놓고, 하루 종일 만화방에 틀어박혀있는 사람들만이 키덜트는 아니다. 기억하라. 우리 모두는 무인도에 홀로 남아도 만화, 장난감, 게임 세 가지만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던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어렸을 때의 추억을 곱씹을 줄 안다면 누구나 키덜트다. 옛날 그 만화를 보고 반가운, 문방구 앞에서 고민하던 그때가 그리운 당신은 이미 키덜트로서의 자질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렸을 때 뭘 하고 놀았던 걸까.

▲ ⓒKBS
▲ ⓒ일본 아사히 TV

어린이 문화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만화다. TV, 책, 장난감, 심지어 필통과 책가방까지 만화와 무관한 것이 없다. 우리가 어린이었던 1990년대로 가보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 <날아라 슈퍼보드> 등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이 흥했다. <아기공룡 둘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TV 창작 만화영화로 1987년 처음 방영됐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만화를 보러 책방이나 극장에 가지 않고 안방 TV 앞에 앉기 시작한다. 인형, 게임, 문구용품, 액세서리, 과자 등 만화 캐릭터의 상품화를 이끈 것도 둘리다. 90년대엔 본격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쏟아져 들어온다. <피구왕 통키>, <축구왕 슛돌이>는 전국의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보냈고, 이때 시작된 스포츠 영재 열풍은 <슬램덩크>로 정점을 찍는다. 이외에도 <기동전사 건담>,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로봇 히어로물이 남아들을 휩쓴다. 한편 더빙판 비디오로 처음 출시된 <세일러문>은 미소녀물의 문을 열고 여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5년간 200화가 방영되고 원작자가 직접 방영 금지를 요청할 정도로 인기는 대단했다. 이후 <뾰로롱 꼬마마녀>, <애천사전설 웨딩피치>, <카드캡터 체리>가 마법소녀물의 길을 이어간다. TV 만화가 이렇게 흥할 때, 극장 만화는 디즈니가 섭렵했다. <인어공주>를 필두로 <라이온킹>, <알라딘> 등 디즈니 대작 만화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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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엔 케이블 만화 전문 채널이 활성화되면서 TV 만화가 더욱 발전하고, 한국 만화가 다시 부활한다. <검정고무신>은 엄마, 아빠를 애청자로 만들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하얀 마음 백구>는 게임과 광고까지 만들어진다. 한편, 일본 수입 만화의 인기도 그치지 않는다. <이누야샤>, <신풍 괴도 잔느>, <원피스>와 같은 만화는 요괴, 도둑, 해적을 한순간에 어린이의 친구로 만들었다. <포켓몬스터>는 닌텐도에서 만든 게임에서 출발해 오늘날까지도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디지몬 어드벤처>, <유희왕> 이후로 이제 만화에서 주인공은 직접 싸우지 않고, 자신과 동고동락하는 ‘사육물’에 몸을 맡긴다. ‘디지몬과 포켓몬을 모르면 왕따’라는 말이 생겨났고, 모든 아이들의 책가방엔 포켓볼, 디지바이스, 유희왕 카드가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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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게는 어떤 만화영화가 유행할까. <뽀롱뽀롱 뽀로로>는 각종 상품, 교재, 게임 캐릭터로 활용되면서 아이들의 대통령으로 등극했다. 프랑스에서 시청률 47%를 기록할 정도로 국외 인기도 높다. 이를 뒤이어 <라바>, <로보카 폴리> 같은 국내 제작 유아용 만화가 인기를 얻고 있다. EBS 애니메이션부 곽내영 PD는 “요즘은 초등학생만 돼도 예능을 많이 본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주 타깃이 유아로 몰리게 되면서 ‘뽀로로’나 ‘타요’가 인기를 얻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제작물의 기획력이 높아지고 연령층이나 내용면에서도 다양해졌다”고 평했다. 재능 TV 편성국 김아람 사원도 “요즘 일본 만화는 성인물이 많아 수급이 줄고 있다”면서도, “<짱구는 못 말려>, <도라에몽> 같은 일본 만화는 여전히 인기가 많다”고 했다.

한편 만화영화와 장난감의 연계가 밀접해진 것도 오늘날의 주목할 만한 추세다. 완구회사 영실업 관계자는 “예전엔 만화가 먼저 인기를 얻으면 이를 응용한 장난감이 상품화됐다. 그러나 오늘날엔 <닌자고>나 <또봇>처럼 완구회사가 아예 만화 기획에 참여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만화영화도 장난감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키드 컬처가 변하니 키덜트 컬처도 바뀌기 마련이다. 곽 PD는 “당장의 키덜트 문화에 집중하기보단 아이들에게 더 도움 되고,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미래의 키덜트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 대학생인 우리가 더 나이가 들어 키티 폰 케이스나 타요 버스를 더 이상 귀엽다 생각하지 않을 때, 그때의 키덜트는 어떤 모습일까. 대한민국만세는 어떤 어른이 돼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