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 윤비 교수 인터뷰

기자명 김보라 기자 (togla15@skkuw.com)

 

지난 20일에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한국사회의 위험과 사회과학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주로 다뤄졌다. 교수들은 공통적으로 기존의 사회과학연구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사회과학연구는 이론에 끼워 맞추는 연구가 돼서는 더 이상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없다. 시민들 또한 사건해결에 있어서 책임자를 찾아 벌하는 것이 실효성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다. “기계설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하지 않았다”는 핑계는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묵인하는 것이다. 이제는 기초부터 바뀌어야 한다.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인지,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인지’ 갈팡질팡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 윤비 교수는 ‘신뢰’라는 추상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 윤비 교수 /안상훈 기자 tkd0181@skkuw.com
 
신뢰’를 키워드로 하는 연구는 기존의 사회과학 연구와는 다르게 ‘인문학’의 요소가 보인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행동할 때 흔히 이성적 판단에 의해 행동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편견과 선입견 등 가치 판단이 전제돼있다. 삶에 있어서 ‘인문학’은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문학은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해주는 기초가 된다. 역사학이나 철학을 빌린 시선은, 우리의 시선을 객관화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해준다.
 
신뢰라는 해결책은 추상적이지 않은가.
신뢰를 단어 그 자체의 어감 때문에 추상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신뢰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신뢰란 사람들이 ‘내가 기대한 대로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오에 강의가 있다고 할 때 시계를 오전 9시에 맞추고 잔다. 이때, 우리는 이 시계가 9시에 울릴 것이라 확신하고 이 시계가 가짜가 아닐 것이라고 신뢰한다. 그래서 마음 편히 잘 수 있다. 이러한 사소한 행위에도 무의식중에 신뢰가 깔려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신뢰 관계에 구체적으로 연결돼있다.
 
신뢰가 사회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90년대에는 ‘버스 줄 올바로 서기’ 캠페인이 있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줄을 잘 서던 정류장은 버스 번호표가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버스 번호표가 세워있는 곳에만 제대로 서면 내가 온 순서에 따라 착석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즉, ‘버스 번호표’라는 시스템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됐기 때문에 질서가 잘 지켜진 것이다. 만약 버스 번호표없이 매번 다른 곳에 버스가 서서 순전히 ‘운’에 의해 편히 가느냐 마냐가 결정된다면 질서는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지킬 시스템이 없으므로 ‘운’을 잡기 위해 좌우를 살피며 버스가 어디로 오나 기회만 살피는 ‘기회주의자’가 된다. 사람이 시스템을 만들기도 하지만 시스템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가까운 사람의 경우 내 이익이나 안전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신뢰’가 가까운 사람 사이의 믿음으로 한정된다면 신뢰의 개념이 한국 사회 전체로 확장될 수 없다. 따라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신뢰가 중요한 것이다.
 
신뢰가 무너지는 이유는.
사회의 신뢰의 바탕이 무너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한 사회의 신뢰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치가들이 충분히 시스템이 잘 돌아가게 하도록 노력하지 않는 데에 있다.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 비난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했느냐는 것이다. 또한, 한 사회에서 법치가 무너지면 신뢰가 가장 빠르게 무너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주류에 속한 사람은 같은 죄를 범해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고 힘이 없는 사람은 더 강하게 처벌 받는 모습을 본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사회가 신뢰를 잃게 되면 감시가 필수적인 ‘판옵티콘’ 같은 사회가 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이 많은 ‘고비용’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사건 사고도 신뢰관계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인가.
대표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살펴보자.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합리적인 시스템의 붕괴’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제의 원인은 기본적인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은 것에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쓰나미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가 없으며 시스템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아서 생긴 인재다. 시민들이 더 화가 난 이유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시스템에 맞춰 가만히 있었던 학생들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신뢰에 의해 작동돼야 할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으면서 사고가 발생했고, 그 결과 신뢰는 더 약화되었다.
 
윤리 교육으로 신뢰가 구축될 수 있는가.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의 부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윤리 교육’의 중요성이 커졌다. 사람들에게 윤리를 가르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도덕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라도 시스템 붕괴의 상황에 닥치면 사람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문제의 이유는 신뢰의 바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없는 사회에선 토마스 홉스의 말처럼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 개인의 도덕성보다는 시스템 구축이 우선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그 원인을 개인의 도덕성에서 찾기 때문에 사고가 난 이후에 ‘책임자’를 찾아내는 일에 분노를 쏟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가 사회 시스템이 사람들을 ‘신뢰’로 이끄는 원동력으로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뢰의 구조를 가장 먼저 붕괴시킨 각 계의 지도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자기 불이익도 감수해야 하고 본인에게 대는 잣대가 더 엄격해야 한다.
권력자들은 신뢰 시스템이 잘 구축되게 함과 동시에, 시스템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즉, 시스템을 제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가동성과 시스템에 변수가 생겼을 때의 대책까지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큰 일이 없는 한 올해 금리 인하는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에 위기가 오는 것은 정부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으므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 자체는 어쩔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이다, 즉 거기에 대비한 가이드라인 또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완전한 시스템의 기반에 의해 신뢰가 구축된다.
 
신뢰사회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회를 끌어갈 사람이라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의 관점을 가지길 바란다.
책을 읽을 때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기껏해야 교수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이라면 사회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세울 수 없다. 강의나 책의 내용을 모방하고 외우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천재는 모방에서 나오지만,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자신만의 창의적 관점에 의한 ‘능동적인 모방’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