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오더라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을 때도 많다. 그래서 이번 칼럼 작성은 나에게 소중한 기회다. 나는 진부한 주제일망정 나의 시선으로 삶을 성찰해보고 싶었다. 내가 혹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문득 남들이 궁금해졌다. 남들의 표현방식을 참고한다면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훌륭하다.”
성대신문 홈페이지에서 몇 편의 칼럼을 읽고 느낀 생각이었다. 다른 이들의 생각과 표현방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몇 편 읽어볼까 했던 글들을 어느새 나는 정독하고 있었다. ‘안녕하시냐’는 질문을 본인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본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삶을 본인만의 관점에서 성찰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그들의 관점에서 함께 성찰했다. 내가 갖고 있던 시각에서 새로운 시각을 더해 나 자신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봤다. 내가 살아오던 세상에서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의미를 성대신문 칼럼에서 발견했다. 이로 인해 나의 세상이 더욱 넓어짐이 느껴졌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남들의 시각을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은 주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주체적이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편협해서는 안 된다. 같은 대상이더라도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시선이 편협하면 대상의 의미도 편협해지고 그가 바라보는 세상도 편협해진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늘 문제점이 생길 여지가 있다. 하지만 바라보는 방식이 편협해지더라도 본인이 느끼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의 시선만 고집하지 말고 늘 열려있는 자세로 다른 시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인생에서 미세먼지와 황사가 밀려오더라도 그 너머의 더 큰 세상을 바라보며 담대히 말할 수 있으리라.
“날씨 좋다.”
▲ 김창훈(글경제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