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 귓가에 이어폰을 꽂고 버스 창가에 앉아 무심코 밖을 쳐다본다. 몇 년째 같은 버스, 같은 시간에 지나는 길엔 추억이 묻어있다. 논술 시험을 보러온 날, 첫 OT를 가던 날, 첫 수업을 듣던 날, 군대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던 날. 그 순간들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향초처럼 그윽한 추억으로 남아 내 과거를 장식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곳에는 추억이 함께 존재한다. 그 순간에 노래가 있다면 더더욱.
새내기 시절의 일이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4월,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과외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과외를 받는 학생 집과 역 사이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 10분을 넘게 걸어가야 했다. 그 길 양옆으론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처음에는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과외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어 집으로 가는 길, 그 밤거리에는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어 있었다. 순간 내 몸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늦췄다. 바라보는, 셀 수도 없이 무수한 꽃잎 사이로 비쳐오는 달빛은 눈이 시리도록 밝았다. 그렇게 걸어갈 때 즈음 갑자기 밤의 기운을 품은 시원한 바람이 나와 거리와 나무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그러자 만개해 있던 벚꽃이 가지를 떠나 거리 위를, 이 공간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이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벚꽃엔딩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자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봄의 전주를 바라보았다. 과거에도, 아직도, 아마 앞으로도 나는 그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 그리고 노래가 교차하는 순간은 우리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기억을 장식한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순간을 가졌는지, 또 만들어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는 그런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준비에 몰두해 있을지 모른다. 시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낭만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의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런 기억들은 자신의 현재에 대한 선물이며, 미래에 우리가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누군가와는 중요하지 않다. 날씨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보자. 그리고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소리는 노래가 될 수도 있고 주위의 소리일 수도 있다. 당신의 기억 속 사진첩을 장식할 그 순간을 찾길 바랄 뿐이다. 그 교차점 위에 올라서 있을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 이재길(한교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