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촌사람들 - '피자봉' 이근주(58)씨

기자명 나영석 기자 (nys2807@skkuw.com)

 

▲ '피자봉'의 이근주 사장

인사캠 쪽문 엘리베이터를 타고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눈에 띄는 새빨간 간판. 투박한 글씨체로 ‘피자봉’이라 쓰인 글자에서는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테이블 한 개만으로도 꽉 찰 만큼 비좁은 가게지만, 항상 호탕한 웃음소리로 가득 찬 곳이다. 주방에서 도우를 반죽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손님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주인 이근주(58)씨 덕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예외도 있나 보다. 2005년 4월 문을 연 ‘피자봉’은 오는 9일이면 정확히 10년째를 맞지만, 개업 후 변함없이 피자 하나로만 그 자리를 쭉 지켜왔다. 그러나 대학가에서 술이나 밥이 아닌, 피자만으로 다른 가게들과 경쟁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실제로 이씨는 업종 변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특히 3년 전 사고로 다리를 다쳐 한동안 배달을 하지 못했던 시기에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당시 그는 ‘오늘의 피자’라는 새로운 메뉴를 출시해 손님들이 저렴하게 피자를 테이크아웃 할 수 있도록 했고, 그것은 곧 피자봉을 대표하는 간판 메뉴가 됐다. “지금은 다리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배달을 다니지만, 그 메뉴가 반응이 좋아서 지금까지 만들고 있어. 최근에는 10주년을 기념해서 더 저렴한 ‘오늘의 피자 레귤러 사이즈’도 출시했지.”
한편 이씨는 1986년에 요리를 배우기 시작해 올해로 20년 가까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던 당시 야간 학원에 다니며 틈틈이 요리를 배우던 게 천직이 돼 버린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한 분야에 전념해 온 만큼 경력도, 실력도 상당하다. “처음부터 제빵으로 시작했고, 여기 오기 전에는 역삼동 강남타워에서 LG 회장단들 디저트를 만들었으니까. 20년 동안 밀가루만 쭉 만지고 있는 거지 뭐.” 이야기를 하는 그의 손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훈장처럼 굳은살로 박혀 있었다.
‘피자봉’의 자랑거리는 비단 맛있는 피자뿐만이 아니다. 이씨는 항상 유쾌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으며,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유명하다. 개업 당시 자녀들의 나이가 20대였기 때문인지 대학생인 손님들이 자식처럼 여겨진다는 그. 평소에도 “오케이!”라는 말과 함께 ‘긍정 에너지’를 배달해 주는 이씨 덕분에 고민이 깊은 청춘의 시기에 힘을 얻은 학생들도 적지 않다. “작년 이맘때쯤 시험 준비를 하는 한 학생이 자주 와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 당시 나도 많이 힘들었고, 그 학생도 힘드니까 서로 조언해준 게 위안이 됐지.” 실제로 그 학생은 제56회 사법시험 합격 후 ‘법률저널’ 사이트에 기고한 합격 수기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를 새벽까지 만들어 주신 피자봉 사장님께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학우들도 그에게는 모두 자식 같은 손님들이다. 그는 먼 타지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외국 학생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학우들에게 이씨는 많은 의지가 된다. 특히 우리 학교 신문방송학과 편입생이었던 브로닌 멀렌(31)씨에게 그는 각별한 존재다. 그녀는 7년 전 출연한 KBS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국 생활을 하며 고마웠던 이웃으로 이씨를 언급했다. “몇 번 피자를 외상으로 주기도 했고, 한번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주기도 했는데, 그게 고마웠나봐.” 머쓱하게 웃으며 친하게 지냈던 학생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는 보람이 가득했다.
10년 동안 우리 학교 쪽문을 지켜 온 ‘쪽문의 수문장’,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언젠가는 프랜차이즈를 등록하고 싶어. 업종을 변경하지는 않더라도 내 이름으로 사업을 펼치는 게 꿈이야.” 그러면서도 그는 “잠깐 떠나 있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성대로 다시 돌아올 것 같다”며 우리 학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인터뷰 내내 껄껄 웃으며 즐겁게 ‘피자봉’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던 이씨는, 오늘도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향해 힘차게 외칠 것이다. “오케이~ 좋아, 파이팅!”
▲ 인사캠 쪽문에 위치한 피자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