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박종우 인터뷰

기자명 나영석 기자 (nys2807@skkuw.com)

 

 

세상은 빠르게 바뀐다. 진화하는 문명의 이면에는, 사라져가는 문화가 있다. 문명과 동떨어져 아직까지도 그들만의 역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사진작가 박종우 씨는 이들의 문화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카메라를 통해 기록하고자 한다. 험준한 산맥도, 뜨거운 사막도 지구 곳곳의 오지를 돌아다니며 만들어가는 그의 오디세이를 가로막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길가의 꽃들이 봄을 알리던 4월, 박종우 사진작가를 만나기 위해 경복궁 근처에 있는 그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 Dying Glaciers of Himalayas /ⓒ박종우 작가
 
#1. 사진기자, 다큐멘터리에 꽂히다
 
대학교와 대학원 모두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다큐멘터리스트의 꿈을 가지고 있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 학보사 사진기자로서 활동하기도 했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다큐멘터리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졸업 후 1986년 신문사에 다니던 때부터였다. 그때 파키스탄으로 여행을 갔다가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프랑스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를 방송국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 프로덕션이라는 개념은 생소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프로덕션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니까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방송국에 판매하는 곳이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나도 프로덕션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에 호기심이 생겼고, 이후 1995년에 신문사를 나와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다.
 
한국일보에서 11년 동안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보도사진을 찍다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양쪽 일을 다 해 보니까, 보도사진은 뉴스를 쫓는 일이더라. 신문은 그날그날의 뉴스거리를 쫓아다니다보니 마감이 끝나면 어제의 뉴스는 잊힌다. 그래서 뉴스 저변에 있는 깊은 이야기는 다루기 힘들다. 게다가 나는 신문사에서 일할 때 글을 쓰기보다는 사진을 주로 찍었기 때문에 심층적인 취재를 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특정 사안에 대해 꾸준히 파고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도사진에 아쉬움이 생겼고, 보다 더 깊이 있는 취재를 해보고 싶어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기 시작하게 된 거다. 보도사진이 연속되지 않는 취재에 그치는 반면, 다큐멘터리는 어떤 한 가지를 찾게 되면 그것을 지속적이고 심층적으로 주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장기 작업인 히말라야 프로젝트 도중 사진과 영상을 병행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사진과 영상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사진과 영상 모두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사진은 정점을 기록할 수 있다. 사진을 찍다가 클라이맥스, 단 한 번뿐인 순간. 바로 그걸 기록할 수 있다는 게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영상은 순간을 포착하기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도구다. 이렇듯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달라서 둘 다 좋다.
그래도 굳이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아직까지는 사진에 더 관심이 많다. 정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이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 사진 한 장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수 있는데, 그런 건 영상이 충분히 보충해 줄 수 있다.
 
▲ DMZ - Forest Beyond the Fence /ⓒ박종우 작가
 
#2. 사라져가는 것들의 기록자로서
 
국내에서는 2010년부터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어떤 작업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과거에는 주로 외국의 오지를 많이 찍었었다. 그런데 2009년 말 즈음에 조선일보에서 연락이 왔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DMZ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영상 작업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민간인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을 가 볼 수 있다는 점에 혹해서 작업을 수락했다. 2009년 말부터 3년 기간을 두고 제대로 찍어보려고 했는데,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이 겹쳐 도중에 중단됐다. 굉장히 아쉬웠다.
DMZ 작업은 한국전쟁 이후 60주년을 맞아 기획한 것이라 굉장히 감회가 깊었다. 일반 사람들은 DMZ라고 하면 밀림에 폐허에…. 신기한 게 정말 많은 곳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작업을 위해 들어가 보니 특별한 건 없어 내심 실망했다(웃음). 그때 우리나라의 산하는 어느 곳이나 똑같다고 느꼈다. 다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뿐이었다.
 
히말라야, DMZ와 같이 지역적인 특색을 드러낸 작품 이외에도 ‘스푼빌 오디세이’나 ‘캐비어’ 등 생물들, ‘횡성전투’와 같이 역사성을 띄는 작품 등 다양한 주제로 작품을 남겼다. 주제에 대한 영감은 보통 어디서 얻는가.
갑자기 영감을 떠올리기보다는 부단한 조사를 통해 작품 주제를 얻는다. 나는 예전부터 정보를 꾸준히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 덜한 편이지만, 과거에는 출장을 가면 서점부터 이 잡듯이 뒤지곤 했다. 작업을 할 만한 소스를 얻기 위해서였다. 특히 히말라야 작업을 할 때, 네팔 카트만두에 ‘필그림’이라는 굉장히 큰 서점이 있었다. 네팔에 갈 때마다 그곳에 들렀고, 전 세계에서 출판된 히말라야에 관한 무수한 서적들을 읽었다. 현지에서 구입해 가져오는 책의 무게 때문에 매번 공항에서 수화물 오버차지를 물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책, 특히 사진집을 많이 사 모으며 온갖 정보를 수집했다.
 
작품 경력이 쌓여가면서 과거에 비해 작품 스타일이나 주제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흔히 작가들이 어떤 스테이지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본인의 작품 스타일을 많이 바꾸곤 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내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도 뭔가 이루겠다는 명확한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쫓아다니다가 시작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내 작업 스타일은 특별하게 바뀌어 가지는 않고,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걸 쫓아다니면서 하는 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이렇다. ‘내가 지금 사진을 찍어 놓아서 그게 훗날 좋은 자료로서 남을 만한 것들, 앞으로 많이 바뀌거나 사라지게 될 그런 것들을 촬영해 두자.’ 그에 따라 작업 테마가 생기는 것이다. 그게 소수민족이 될 수도 있고 문화유적이 될 수도 있다. DMZ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과거에 인간이 만들었던 구조물이나 건축물이었으나 전쟁 등을 거쳐 폐허가 되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 그에 대한 작업들을 진행 중이다.
 
 
▲ Kazakh Hunter /ⓒ박종우 작가
 
#3. 인생을 건 서사시, 그리고 도전
 
평생 프로젝트로 ‘몽골리안 루트’에 대해 언급했다. 어떤 프로젝트인가.
TV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기획하게 된 주제다. 한두 해로 끝날 일이 아니겠다고 생각해 평생 두고 진행할 작업으로 삼았다. 아직은 작업을 많이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해야 할 다른 일들도 많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차분히 준비하려고 한다.
프로젝트는 ‘몽골리안 루트’를 가지고 퍼진 민족에 대한 내용이다. 그들은 수많은 인종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대륙을 이동하며 폭넓은 터전을 이루고 있다. 몽골리안은 현재의 몽골에서 발원했지만 서쪽으로는 바이칼 호수, 즉 유럽에까지 도달해 있고, 동쪽으로는 남미 대륙 끝까지 가서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그쪽 계보다. 거의 지구의 1/3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이 작업은 지역적으로도 굉장히 범주가 넓어질 수밖에 없고, 평생 프로젝트로 길게 봐야만 한다. 기회가 올때마다 해당 지역들을 꾸준히 찾아다니면서 해당 계통의 ‘사람들’ 위주로 접근 틀을 잡고 기록하려 한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반대도 많았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고민이 많았다. 결혼 전에는 큰 제약 없이 혼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결혼 후에는 그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결혼에 대해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자’는 나름의 기준을 갖게 됐다. 어쩌다보니 당시로써는 늦은 나이에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게 됐는데, 만나서 대뜸 물어봤다. 혹시 여행을 좋아하느냐고. 그런데 아내가 혼자 에티오피아를 여행한 적도 있다고 대답했다. 속으로 ‘아,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이후 몇 달 만에 아내와 결혼하게 됐는데 이제는 아내가 여행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혼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아 힘들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도 데리고 여행을 돌아다녔고. 가족 단위로 세계를 돌아다니니까 돈이 많이 든다. 경제적인 부분이 어렵지만, 그래도 여행을 함께 다니니까 아내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줄었다. 종종 혼자 여행 다닐 때에도 가족들이 잘 이해해주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 내 작업의 조연출을 맡고 있는 조수가 연애를 하면서 나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웃음).
 
앞으로 도전하고 싶거나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현재 4K UHD* 해상도로 한국의 건축에 대한 촬영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국내 작업에 묶여 있어 2년째 기존에 외국에서 하던 작업은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모두 몽골리안 루트 작업의 일환인 작업들이다. 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이 굉장히 빨리 변화하고, 사라지고 있다. 최대한 빨리 그들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그밖에도 DMZ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하던 사진 작업도 아직 남아 있다. 바쁜 일정 탓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끝내야 할 일들이다.

▲ The Last Salt Caravan /ⓒ박종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