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친구여, 당신은 안다. 세상이 쓰잘데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우리네 삶에 지극히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요즘 ‘대학로 연극에 위기가 닥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원래 연극은 항상 어려웠다. 배우들은 ‘철이 들면 연극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돈이 되지 않는 연극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대학로의 연극인들이야말로 ‘쓸데없지만 고귀한 것들’을 지켜가는 사람들이다. 서울연극제가 한창인 대학로에서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 도정일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서문 중에서.
 
연극인들의 고향, 대학로
혜화역 2번 출구로 올라오면 이화동 사거리에서부터 혜화동 로터리까지 쭉 뻗은 8차선 대로변이 나온다. 이 1.5km의 대로변을 중심으로 젊음과 문화의 거리 대학로가 형성돼 있다. 대학로는 연극의 거리이기도 하다. 160여 개에 달하는 극장들이 대학로의 골목골목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이렇게 많은 소극장이 골목 곳곳에 숨겨져 있는 지역은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80년대만 해도 연극의 중심지는 대학로가 아니었다. 정호순 전 동신대 겸임교수의 저서 <한국의 소극장과 연극운동>에는 당시 상황이 잘 담겨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신림동 쪽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됐다. 그곳에 1981년 문예회관(현 아르코대극장)이 설립되면서 명동이나 신촌인근에 산재해있던 소극장들이 대학로로 모이게 됐다. 80년대 전반기 소극장의 중심지가 신촌이었다면 80년대 후반부터는 그 중심축이 점차 대학로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제 연극과 대학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단어가 됐다. 연극인들은 대학로를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싸우고 사랑하고 술 마시고 연극을 했다. 이런 그들에게 대학로를 상실하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상실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대학로에서 18년 동안 연극을 해온 연극배우 황원상 씨는 고등학생 때 대학로를 돌아다녔던 낭만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가 고등학생이었던 1986년 당시 이화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큰 대로는 ‘차없는 거리’로 지정됐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 되면 대로변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많은 거리의 예술가들이 몰려와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했다. 대학생들은 느닷없이 벌어진 축제의 낭만을 즐기고, 중·고등학생들은 그 분위기에 몰래 합승해 아찔한 일탈을 즐겼다.
이번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인 ‘물의 노래’ 연출가 김국희 씨에게 대학로는 그녀의 온 젊음을 쏟아 부은 공간이다. 밤샘연습을 한 동료들과 함께 마로니에 나무 아래에서 캔맥주를 먹었던 추억에서부터 포스터를 바리바리 들고 대학로의 온 골목을 돌아다녔던 추억까지 모두 그녀에게 소중한 기억들이다.
 
▲ '혜화동 1번지' 배우들이 공연 전 몸을 풀고 있다.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온 세상 슬픔 대신 울어주던 연극인
대학로의 중심지와는 조금 먼 혜화동 로터리 부근에는 ‘혜화동 1번지’라는 작은 극장이 있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려가니 불이 환하게 밝혀진 대기실에서 배우들이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있었다. 배우들은 저녁 8시에 있을 공연의 최종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극단의 연출가이자 공동 대표인 구자혜 씨는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대학생 때 연극동아리에 ‘발을 잘못 들였다.’ 연극에 매료된 그녀는 대학 졸업 이후 연극 공부를 하고 31살에 처음 연극계에 *입봉했다.
그녀는 ‘시대의 발언’으로서 사회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연극을 만들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 사회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촉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가 이번에 준비한 연극은 ‘곡비’다. 곡비(哭婢)란 말 그대로 ‘곡을 하는 노비’란 뜻이다. 조선시대 곡비는 상갓집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상주를 대신해 울어주는 역할을 했다. 곡을 진정으로 잘하려면 타인의 슬픔에 진정으로 공감해야 한다.
연극인은 사회의 고통과 슬픔을 포착해서 연극으로 표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연극인들은 조선시대 곡비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 한 로맨틱 코미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배우드링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대학로 연극배우로 산다는 것
연극배우 A 씨(31)는 2003년부터 10년 넘게 대학로에서 연극을 해왔다. 연극배우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다. 10년 경력의 그녀가 연극 한 회당 받는 출연료는 3만 3,000원, 신입 연극배우들은 회당 기본 2만 원 선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이나 경력에 따라 최대 4~5만 원 정도를 받는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순수하게 연극만으로 버는 돈은 100만 원 남짓. 2015년 최저생계비 92만 5,000원을 간신히 넘는 정도다. 대부분의 연극배우는 이와 비슷하거나 이보다 더 못한 상황에 처해있다.
연극만으로는 생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배우들은 대부분 연극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쉽지 않다. 대개의 연극배우는 교대로 두세 팀이 돌아가면서 연극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공연시간이 불규칙하다. 단체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공연도 언제 잡힐지 모르기 때문에 정기적인 시간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극배우들이 주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한다.
A 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주거비는 덜 수 있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동료배우들의 상황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그녀가 연극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연극이 재밌고 연극을 할 때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연극판에 회의를 느끼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연극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2011년 악덕 소극단 대표를 만나 임금을 떼이고 연극판을 떠난 적이 있었다. 연극 일을 관두고 다른 직장을 얻었지만, 대학로에 올 때마다 다시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연극 무대에 복귀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연극이 상업적이고 비상업적인 것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연극에 순수한 애정을 가진 연극배우들이 설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드는 실정이다.
 
▲ 박장렬 서울연극협회장이 대학로의 현 상황을 얘기하며 한숨쉬고 있다.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연극인들 옥죄는 문화지구
지난달, 28년 역사의 ‘대학로 극장’이 결국 문을 닫았다. 건물주가 월 340만 원이던 임대료를 월 440만 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극장 수입 400만 원으로 근근이 극장을 경영해오던 극장주는 결국 극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급등한 임대료로 인해서 소극장들이 문을 닫는 경우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상상아트홀’이 25년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고, 경영난을 겪었던 ‘김동수 플레이하우스’(2000년 개관)도 같은 달 폐관했다.
소극장 줄도산의 배경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서울시는 혜화로터리와 이화동로터리 사이 1.5㎞ 구간을 문화지구로 정했다. 문화지구는 역사와 문화자원을 관리·보호하고 문화환경 조성을 도모하기 위해 지정된 구역이다. 문화지구 내에 있는 건물에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생기면 정부는 건물 고도제한을 완화해주고, 부동산 조세를 감면해주는 등의 여러 혜택을 주었다. 이로 인해 2004년 57개였던 대학로의 민간극장은 작년 말 142개로 늘었다.
그런데 문화지구 지정으로 인해 대학로 연극계는 양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성장의 혜택은 오직 건물주에게만 갔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소극장 주인들은 결국 대학로에서 쫓겨났다. 이 지역의 땅값은 매년 올랐다. 실제로 대학로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문화지구 지정 이후 매년 평균 10%씩 땅값이 올랐다고 답했다. 그는 “홍익대, 상명대에 이어 서경대가 대형 공연장을 짓고 있고, CJ와 롯데 등 대기업의 극장 진출도 임대료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며 상황을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극인들은 ‘차라리 문화지구 지정을 취소하라’고 말한다. 문화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문화지구가 역설적으로 연극인들을 옥죄고 있다.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영세한 소극장이 대기업과 대학의 대형극장들과 경쟁하긴 쉽지 않다. 대형극장의 좌석들은 소극장의 좌석들보다 넓고 쾌적하다. 또한, 대기업 기획사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투입해 TV에 나오는 유명 스타들을 섭외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극장 혹은 소극단들은 ‘순수한’ 연극만을 지향하기 어렵다.
특히 소극장을 대관해야 하는 소극단의 경우 상황은 더 어려운 실정이다. 한 소극단 대표는 “회당 대관료가 최소 50만 원에서 평균 100만 원 정도 한다. 주 5회씩 4주간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한 달에 대관료만 2천만 원에 달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소극단들은 높은 대관료를 갚기 위해 돈이 되는 상업적인 연극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최근 대학로 연극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물이 지배적이다. 현재 대학로에서 한 로맨틱 코미디 연극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A 씨도 현재 흥행하고 있는 대학로의 상업연극이 대부분 비슷하다고 고백했다. 내용이 비슷하다 보니 배우의 입장에서 오디션을 보다가도 헷갈리는 일도 잦았다.
소극단들은 관객이 많이 오는 상업적인 연극만 기획하고, 이로 인해 연극의 다양성은 크게 저하됐다. 천편일률적인 상업연극에 실망한 일부 관객들은 대학로를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명쾌한 해결방법은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소극장들은 대학로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8년 경력의 연출가이기도 한 박 회장은 대학로의 현실을 얘기하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대학로를 시장경제 논리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기술장인들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서 그들을 보호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없어지면 하나의 문화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여기가 정말로 문화를 보존하는 문화지구라면 진짜 문화지구에 맞는 특별한 법이 있어야 합니다.”
전통있는 여러 소극장들이 문을 닫고 있지만, 정부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연극인들의 축제’인 서울연극제가 지난달부터 오는 17일까지 열리게 됐지만, 주공연극장인 아르코대극장이 개막식 바로 전날 폐쇄되면서 축제의 흥겨움은 한풀 꺾인 상황이다. 이에 서울연극협회장은 지난달 13일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삭발식을 하고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파란천막 뒤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위태롭게 펄럭였다.
 
◆입봉=연출가, 극본가가 처음으로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