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제 강점기 농촌 계몽운동으로 시작한 ‘농활’의 낭만적 이미지는 여전히 강력히 남아 있다. 한국 고전문학 권장도서로 널리 읽히는 심훈의 상록수에서 그려지는 농촌은 전 국토의 개발과 도시화로 찾기 어려운 데도 그렇다. 생명을 내보내주는 흙에 대한 사랑과 순수한 농촌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여전히 도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계몽주의적 농활이 크게 변모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이후 학생운동과 농민운동이 만나면서부터였다. 권위주의 시대에 운동권 학생들은 도시 근로자들의 노동운동과 연대는 물론 농민운동과의 연대도 추구했다. 농민들을 규합하고 의식화시키는 운동권 학생들의 농활활동은 1980~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농민단체들의 이념화를 도왔다. 그러나 민주화이후 대학사회에서 운동권은 점차 힘을 잃게 됐고, 농민단체들도 이념투쟁보다는 쌀 시장 개방 반대와 같은 이익추구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계몽에서 이념으로 이어져왔던 대학생 집단과 농민층의 연결고리는 신사회운동 어젠다인 환경, 생명, 반핵 등으로 대치되고는 있으나 그 반향은 작다. 농활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동기도 원대한 이상이나 이념에 이끌려서라기보다는 봉사학점을 따거나 뭔가 자연이 줄 것 같은 신선한 자극이 필요해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농민의 수가 급격히 줄고, 소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불명확해진 오늘날 대학사회나 농촌사회에서 농활의 자리는 초라해 보인다.
농활은 방학기간 동안 학생들이 단체로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다. 부족한 일손은 농사일을 돕는 순수 근로와 아이들 교육 및 연대활동으로 나뉠 수 있다. 과거 농활은 전자 못지않게 후자의 비중이 컸었고. 그러한 이유로 대학생들이 농활에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농촌사회에서 대학생들이 잘 할 수 있는 공동체 역할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농촌인구 분포상 가르칠 학생들도 연대할 젊은이들도 별로 없다. 어렵사리 지역에 젊은 농촌 지도자가 있다면 그들은 농촌사회의 문제에 대해 무지한 대학생들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농활이 여름 한철 대학생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단순 활동에 그친다면 대학생들의 방학 활동은 자연히 도시를 택할 것이다. 도시에는 저소득층 자녀와 소외된 다문화가정 학생이나 교육봉사활동을 통해 도와줄 젊은이들이 많다. 근접성 면에서도 대학들이 소재한 도시가 대학생들의 방학 중 활동을 학기 중 활동으로 연계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농활’이 ‘도활’로 대체되지 않으려면 농활이 일시적 근로 지원이나 어쭙잖은 의식화 활동보다는 대학생들이 더 잘 제공할 수 있는 농촌사회의 수요를 찾아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농촌사회의 문제는 고령화된 과소인구가 상대적으로 넓은 지역에 흩어져 생활함으로써 오는 안전시스템 부족, 상호부조 쇠퇴, 공공서비스로부터 소외 등의 복합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공무원의 손이 제대로 닿지 않는 이러한 사회문제들에 농활이 유익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으려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는 농활을 떠나기 전에 해당 지역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미리 현장학습을 통해 해당 지역사회에 필요한 활동을 찾아내고 준비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참여활동이나 마찬가지겠으나 참여의 구체적 목적이나 이를 실현할 효과적인 프로그램 없이 농활을 간다면 참여한 학생이나 농촌 지역사회 모두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둔 것인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농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현재와 같은 일회성 농활보다는 특정 지역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해당 지역사회와의 밀착도를 높이는 것이다. 특히 그곳에 다녀간 네트워크가 있는 농활 지도자 학생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디어도 준비도 없이 떠나는 농활은 대학 동아리들의 농촌 나들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