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늦은 밤, 기분 좋은 취기 속에 버스 한편에 앉아 차창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빗방울 위로 번지는 밤거리를 바라보는 것은 참 즐겁다. 알코올과 밤과 비는 그 위에 낭만을 입힌다. 모든 것이 수채화 같다.
 
‘차를 기다리는 저 사람들은 누굴까? 누구와 전화기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저기 종종 뛰어가는 사람은 집으로 서둘러 가나보다. 어, 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이인가 봐. 참 보기 좋다. 혹시,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오면 오늘 밤을 저 둘은 어떻게 추억할까?’
 
오지랖도 넓다. 생각은 빗방울과 불빛에 실려 또 어딘가로 흘러간다.
 
‘강의 시간에 문자 보낸다고 며칠 전 학생에게 너무 심하게 뭐라 그랬던 건 아닐까? 솔직히 그 나이에 난 더하면 더했지. 생각해 보면 내 선생님들이 참 참을성이 많은 분들이셨구나. 그런데 벌써 대학을 들어간 것이 30년이 돼가네. 참!’
 
갑자기 옆자리 학생이 혼자 중얼거리는 날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으면 안 되지.’ 얼른 표정관리를 해 본다. 문득 아직 대학에서 자리를 못 잡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강사로 지내고 있는 후배의 얼굴이 빗방울 위로 겹쳐진다.
 
‘실력 있는 친구인데…. 그때 같이 레슬링 하며 논다던 아들들도 꽤 컸겠구나. 애들 가르치려면 돈 들어갈 곳도 많을 텐데 어떻게 버티는지…. 옛날에는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 되면 어려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 많이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교수가 그다지 안 훌륭한 직업인지, 내가 별로 안 훌륭한 교수인지 원…. 정치가가 되면 나았을까? 아니면 판검사? 재력가? 뭐 그런 직업들은 애당초 소원해 본 적도 없으니 처음부터 훌륭한 사람 돼서 사람들 도와준다는 것이 헛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참….’
 
좀 기운이 빠진다. 차가 고가도로에 올라선다. 저 아래 아득히 아파트들이 보인다.
 
‘늦은 밤인데 불이 켜진 집이 많네. 누구를 기다릴까? 아버지? 퇴근해서 돌아올 아들? 딸? 요즘은 입시지옥이 더 심해졌다는데 아마 학원에서 돌아올 아이들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아이들…아이들….’
 
갑자기 마음 위로 검은 구름이 내려앉는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을 마음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그 어머니, 아버지들…. 돌아와 지친 얼굴로 인사하던 그 모습이 현관에 어려 있고, 배고프다고 투정하던 모습이 식탁과 의자에 얹혀 있을 텐데…. 그분들은 이 밤을 어떻게 견딜까….'
 
갑자기 저 어둠 밖의 세상에는 너무 많은 고통과 슬픔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력감이 커진다.
 
‘누구지? 베버였던가? 학문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영혼의 안식과 조화와 사랑만이 있는 세상을 찾는 사람, 종교에게 가라고 말했던 사람이…. 나도 안다.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지. 그런데 말이요, 베버 선생. 오늘은 그런 소리가 달갑게 들리지 않소이다. 당신 말대로라면 학문이라는 놈, 너무 초라하지 않소? 그리고 그 학문이란 놈, 오늘까지 짝사랑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난 너무 불쌍하지 않소?’
 
자정도 다된 밤, 버스 한 대가 무릎 위에 책가방, 신주처럼 끌어안고 오만가지 생각에 잠긴 서생(書生) 하나 싣고 4월 빗길 도로 위를 달린다.
▲ 정치외교학과 윤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