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을 싫어했다. 투박하고 남자 손처럼 두껍고 거친 그 손이 난 싫었다. 특히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싫었다. 어렸을 때 다쳐서 이렇게 됐다고 하시는 그 손가락은 손톱으로부터 가운데로 쭉 찢어져 깊게 파이고, 파인 바깥쪽은 굳은살이 생겨 어린 마음에 괴물 손 같다고 생각했다. 비싼 핸드크림, 수분 크림을 사다드리고 오일을 발라 마시지도 해드려 보았지만 이미 깊게 파인 엄마 손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우리 엄마가 올해 환갑이 되셨다. 엄마와 나의 나이 차이 38살.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이른 환갑이지만 제대로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에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 목표는 4박 5일 대만 여행. 23년 동안 키워주신 은혜 다 갚을 수 없지만 무언가 엄마 돈이 아닌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엄마와 추억을 쌓고 싶었다. 카페 알바는 어렵지 않았다. 서툴지만 레시피를 외워 직접 음료를 만들고 손님들을 대접하면서 나름 보람도,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와 주문이 밀려올 때면 정말 힘들었다.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미안함과 왜 이렇게 몰려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가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하지만 차곡차곡 통장에 돈이 쌓이는 걸 보면 엄마와의 추억도 차곡차곡 쌓이게 될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역시 학기 중에 학업을 병행하면서 알바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점심을 거의 거르고 알바를 하다 보니 배고픔은 말할 것도 없었고, 손님들이 몰려오면 고무장갑을 낄 새 없이 맨 손으로 설거지를 하다 보니 주부 습진이라는 게 생겼다. 나이 23살에 집안일도 거의 안 해보고 곱게 자란 나에게 주부습진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창 예쁠 나이에 손이 이렇다는 게 싫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오른손 엄지손가락에만 주부 습진이 생겼다. 엄지손가락을 가로지르는 큰 골짜기.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이다. 엄마 손가락. 맞다. 엄마 손가락에 패인 골짜기 모양이랑 똑같다. 오른쪽 끝에서 가운데 쪽으로 길게 그리고 깊게.
20살에 결혼하시고 6년간의 시집살이에 온갖 고생 다하시면서 19년 만에 나를 낳으시고 지금까지 힘들게 나를 키워 오신 우리 엄마. 그랬구나. 내가 몰랐구나. 엄마는 다치신 게 아니라 날 기다리고 날 자라게 해주시는 동안의 희생이 다 담겨있었구나. 깊게 패인 엄마 손가락만큼 엄마는 얼마나 아팠을까. 나보다 한창 어린 20살부터 궂은 일 다 겪어오셨는데 나는 그걸 왜 모르고 살았었던 걸까. 이제부터라도 내가 엄마의 그 세월들을 다 채워 드릴 수 있을까. 엄마의 그 긴 시간 동안의 생각과 한숨과 눈물들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왕복 8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 엄마, 계속 내 걱정만 하고 있을 우리 엄마. 움푹 팬 골짜기만큼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 권지원(전자전기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