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소방관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정정락 기자
  • 승인 2015.06.03 21:29
  • 호수 158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년 경력의 소방관 A씨는 소방관들의 휴게실로 앞장섰다. 낡은 재래식 건물로 들어서 회색 돌계단을 걸어 올랐다. 휴게실은 아무런 장식 없이 꼭 필요한 물건들만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구석에는 젖은 작업복들이 빨래 건조대에 아무렇게나 축 늘어져 있었다.

최근 들어 많은 매체를 통해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노고가 알려졌다. 이에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소방관들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으며,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 소방서를 찾아가 현직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는 목장갑을 끼고 화재 진압을 한 적도 있었어요.” 최근 소방관에 모아진 사회적 관심 덕분에 사용하는 장비의 질이나 보급량이 한결 나아진 편이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개선됐을 뿐이다.
그에게는 두 개의 방수복과 방수 장갑이 있다. 화재 진압 때 사용하는 이 장비들은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한참을 말려야 한다. 두 벌을 모두 말릴 때, 다시 화재가 발생하면 다른 소방관의 장비를 빌려 입고가기 일쑤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장비를 입어야 할 때도 있다. “사소한 문제 같아 보일 거예요. 그런데 화재진압이나 응급 구조 상황에서 몸에 안 맞는 장비를 입고 작업하는 거, 생각보다 되게 위험하거든요.”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팼다. 여의치 않을 때는 덜 마른 장비를 입고 나선다. 물을 잔뜩 먹은 장비들은 평소보다 훨씬 무겁다. 작업은 더욱 힘들어진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사비로 장비를 구매하기도 했다.
2012년 구미의 공장에서 유독가스인 불산 가스가 누출됐던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소방관들은 노후화돼서 가스를 막아줄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보호복을 입고 두려움에 떨며 현장에 투입됐었다. 다행히 순직한 소방관은 없었지만 그 때 투입됐던 소방관들은 아직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특수 재난에 관한 장비가 굉장히 부족해요. 그런 경우에는  저희도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죠.” 그는 마치 단어가 무거운 것처럼 뒷말을 유난히 느릿하게 꺼냈다. 문득 그가 입고 있는 작업복에 시선이 갔다. 낡은 작업복에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소방차 역시 큰 문제다. 노후화 된 소방차가 많다. 그런 소방차는 잔고장도 많다. 고장이 난 소방차를 수리하는 중에 화재가 발생하면 다른 구역의 소방서에 지원을 요청한다. 이 때 구역끼리 응급 상황이 겹치기라도 하면 큰 낭패다. 이로 인해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많다. 시민들은 전후 상황을 모른다. 때문에 시민들의 모든 원망은 소방관들에게 쏟아진다. 이를 묵묵히 감내하는 것도 소방관들의 몫이다. “다들 욕을 많이 먹죠. 하지만 시민 분들께서 그러시는 게 이해가 가요.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나지막한 웃음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그는 자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서 내부에 방송이라도 나올 때는 눈에 띄게 몸을 움찔거렸다. “사이렌이 울리면 당장 출동해야하거든요.” 목소리에 피로감이 짙게 묻어났다.
장비의 노후화나 모자란 수량도 문제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부족한 인력이다. 소방관에게 휴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들은 대개 24시간을 3교대로 근무한다. 심한 곳은 2교대 근무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한 사람이 그만큼의 근무를 더 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한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훈련이나 교육에 인원을 차출하고 나면 남은 이들의 부담은 더 가중된다. 부족한 인원은 피로를 가중시킨다. 구조 작업도, 화재 진압도 수월치 않다.
그는 자신들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한 다른 소방서의 소방관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소방관은 교대도 하지 못한 채, 혼자 무리하게 화재를 진압하다 탈진해 쓰러졌다. 발견됐을 때는 소방복을 모두 벗은 채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인원과 예산이 많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나 홀로 소방관’들도 꽤 있다고 했다. 차량 운전부터 구조 작업, 화재 진압까지 모든 업무를 혼자 도맡아 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휴식조차 없다. 한 소방관은 혼자서 화재 진압을 하던 도중, 옆 건물로 빨리 옮겨가기 위해 건물 창문으로 이동하다가 떨어져 숨진 일도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현실적 어려움은 무엇일까. 그의 눈이 한동안 허공을 더듬었다. 한참 후 흐릿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일이 힘든 것도 있지만, 실은 가족들에게 제일 미안해요. 함께 보낼 시간이 거의 없으니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인사캠 - (03063)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3층 50325호
  • TEL : 02-760-1240
  • FAX : 02-762-5119
  • 자과캠 - (16419)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성균관대학교 학생회관 2층 03205호
  • TEL : 031-290-5370
  • FAX : 031-290-5373
  • 상호 : 성대신문
  • 발행인 : 신동렬
  • 편집인 : 배상훈
  • 편집장 : 박기황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기황
  • 성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성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skkuw.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