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정락 기자 (woo7875@skkuw.com)

 

▲소방관들의 낡은 방수복이 햇볕에서 마르고 있다. ⓒ정정락 기자 woo7875@skkuw.com

최근 국내에는 크고 작은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재난에 앞장서서 구조 작업을 벌이는 것이 소방관들이다. 이들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태도가 주목 받으며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방관의 희생과 관련된 기사가 포털 사이트나 SNS에 올라올 때마다 네티즌들의 응원과 감사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SBS에서는 이런 추세에 부합하여 2013년 <심장이 뛴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소방관들의 업무 모습을 담아내며 국민들의 의식 및 관심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소방관들이 처한 현실은 굉장히 열악하다. 노후화 된 장비도 많고, 지급되는 장비 수량도 부족하다. 낙후된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과 부산조차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서울은 개인안전장비 보유량이 4만 6,450대로 적정 보유량에서 22%가 부족한 상태다. 사용연수를 초과한 장비의 비율도 23%에 이른다. 부산은 적정 보유량보다 19.6% 부족한데다가 장비의 노후수량 비율도 19.4%에 이른다. 노후화 된 소방차로 인해 화재 진압에 곤란을 겪을 때도 많다.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건수에 비해 이에 대응해야 하는 인력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소방관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2013년 기준 전국의 소방공무원은 3만 8,587명이었다. 소방관 1명이 담당하는 인구수만 1,320명에 달했다. 이는 △미국 912명 △ 일본 799명 △홍콩 765명 등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국내 소방관이 외국의 소방관에 비해 업무량이 훨씬 과다할 수밖에 없다. 이에 소방 관계자는 “현재 많은 소방서들이 최소 인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며 “대체인력이 전혀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 소방공무원 인력확충 공약을 내세웠으나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소방관이 여타 공무원과 달리 힘겨운 현실을 겪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소방관들의 대다수가 ‘지방직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국가직 공무원은 국가에 속해있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이와 다르게 지방직 공무원은 지방자치단체에 속해 있는 공무원들로, 시장 및 도지사에 의해 임명된다. 소방관을 제외한 군인, 경찰, 교도관, 해경 등 모든 제복 공무원이 국가직이다. 반면, 소방관들은 지방직 공무원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관리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소방 예산을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보조금은 1.7%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세가 78%이고 지방세가 22%인 국세위주의 조세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각 지방의 재정만으로는 소방을 위한 충분한 예산을 사용할 수가 없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소방에 배정한 예산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끼리의 빈부격차가 심하다. 재정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은 장비 확보나 인력 확충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각 지역마다 소방 서비스의 질과 환경이 모두 다르다. 게다가 겉으로 크게 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들이 안전이나 재난 관리 쪽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소방안전본부에서는 국민에게 균등한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소방 관계자는 “행정 업무를 맡는 분들은 현장의 어려움을 잘 알지 못한다”며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소방관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이들을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에 소방관들은 지난 해 여름 광화문에서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호응을 보냈다. 언론에서도 수차례 기사를 내보냈다. 이처럼 지방직 공무원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의가 꾸준히 지속돼왔지만 안전행정부 등의 정부 부처는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소방 업무의 성격상 지역 사무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이것이 지방분권의 가치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 등을 그 근거로 든다. 하지만 현재 소방 업무에서 화재 진압 같은 순수 자치사무는 19%에 불과하다. 오히려 △생활안전 △테러 △특수재난 등의 국가사무 또는 공동사무가 81%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소방의 위상이 달라져, 이제는 대부분의 소방 업무가 국가사무나 공동사무기 때문에 소방 종사자들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다. 소방 관계자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헌법 34조 6항이 명시한 국가의 책무”라며 정부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리고 “소방 업무는 이미 지방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국가의 일을 지방에 떠넘기는 격”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