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다빈 기자 (dabin@skkuw.com)

▲ 물리학과 박성하 교수가 직접 만든 구조물로 DNA를 설명하고 있다. /ⓒ이다빈 기자 dabin@skkuw.com 

 

1940년대 DNA가 사람의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DNA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사람에게 생김새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DNA의 원리를 알기 위해선 ‘구조’를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1953년,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는 “DNA는 이중나선형 구조”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DNA 안에서 유전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4종류의 염기 △구아닌(G) △시토신(C) △아데닌(A) △티민(T)이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상보적으로 수소결합을 이루는 이중나선 모델을 제시했다. 이 발견은 수많은 생물학 연구의 출발점이 됐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초, 과학자들이 DNA를 생물학적 관점이 아닌 물질적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는 ‘DNA 나노기술’이라 부른다. DNA 염기서열을 유전적 정보를 전달하는 전달자가 아닌 기하학적 구조물을 만드는 하나의 물질로 보는 것이다.
이에 우리 학교 물리학과 박성하 교수가 DNA 나노기술을 이용해 ‘자기복제를 하는 고리 모양의 인공 DNA 나노 구조물’을 구현했다. 본 연구의 재료로 쓰인 것은 ‘T자 모양 DNA 조각’이다. T자 모양 DNA 조각은 이중나선의 형태를 띠고 있는 DNA 구조의 끝 부분을 외가닥으로 남겨 상보적인 결합을 준비한다. 이 조각들이 ‘DNA 버퍼 용액’ 안에서 자기조립을 통해 둥근 고리 모양의 구조물을 만든다. 쉽게 말해 T자 모양 DNA 조각이 벽돌, 이로 구성된 둥근 고리 모양의 구조물이 벽돌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물에 DNA 연료 가닥을 넣으면, 외가닥으로 남겨진 구조물과 결합해 새로운 T자 모양 DNA 조각을 만들어 낸다. 이 조각들은 또다시 크고 작은 고리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증식과정을 진행한다.
한편, 현재는 DNA의 증식 과정에서 연구진들이 단계별로 개입해 DNA가 스스로 증식할 수 없다. 앞으로 박 교수는 DNA가 시간 제어를 통해 다음 세대를 자동으로 만들 수 있도록 후속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염기 서열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돌연변이’를 발생시키는 등 또 다른 생물학적 현상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이번 연구는 생명체를 정의하는 3가지 기준 △단위 개체의 존재 △성장 및 신진대사 △자기 조립 중 두 가지를 만족하는 자기 조립하는 복제 개체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분자인식을 통해 자기조립을 이루는 능력을 갖춘 DNA의 자기복제 시스템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공지능, 인공컴퓨터, 인공로봇 등의 원리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DNA의 '염기서열'에서 인공복제기의 ‘논리 연산’으로 바뀔 뿐이다. 이로써 우리는 생물학적인 자기복제의 원리를 물질적인 소재로 설계해 인공 자기복제기를 만들 수 있는 미래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덧붙여 박 교수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DNA를 이용한 음악 작곡, 원주율 pi 계산 등의 모델링을 통해 보다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연구도 선보이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