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택수 기자 (ltsu11@ naver.com)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아이러니, 관능,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Mark Rothko

 ⓒ한가람 미술관 제공

 Section 1 _ Age Of Myth [신화의 시대]
입구를 넘어 어두운 전시장을 해치고 들어가면 표정을 알 수 없는 한 남자와 마주친다. 칙칙한 피부와 비정상적으로 곧은 몸, 감은 듯 반개한 눈을 가진 이 남자는 지하철역 정 중앙에 서 있다. 남자 주위의 사람들은 창백하고 어딘가 불만에 차 있다. 그림 안에 6명은 아무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1940년대 지하철역은 공허하고 차가우며 지금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하다. 마크 로스코의 초기작인 이 ‘지하철 환타지’는 세계 2차 대전 시기의 미국을 상징한다. 전쟁에서 한 발짝 비켜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지켜보기만 하는 미국의 시민들은 로스코에게 일그러지고 왜곡된 형상으로 보인 게 아닐까.

Section 2_ Age of Colour [색감의 시대]
좁은 통로 양옆으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그림들이 걸려있다. 초등학생들이 스펀지에 물감을 적셔 스케치북에 찍은 듯한, 갖가지 색상과 크기를 지닌 네모로만 차있는 캔버스. 대가의 그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장난스럽다. 그림에 찍힌 네모들은 하나의 형상으로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도 보인다. 뭘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제목을 훑어봐도 모두 ‘넘버’로 통일돼 있다. 옆에선 잔뜩 차려입은 사람들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Section 3_ Golden Age [황금기]
머리 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더 커지고 조명은 어두워지며 흰 벽은 그 색이 바래 회색빛을 띤다. 경건한 분위기 속 로스코의 대표작들이 눈앞에 그 모습을 보인다. 멀리서 보면 두세 가지 색으로 색칠된 10분이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선입관을 비우고 바라보면 그 깊은 본질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수 없이 덧칠한 광기마저 엿보이는 붓질과 본연의 감정을 자극하는 색의 향연. 미묘한 붓질로 탄생한 그림의 음영은 녹아내리고 일그러지다 부풀어 오른다. 2M 크기의 그림은 한없이 커져 저 먼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우리는 어느새 압도당해 경외하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Section 4_ Mural Age [벽화의 시대]
짙은 갈색의 바탕 위에 주황색의 뻥 뚫린 구멍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눈으로도 어딘가로 통해있는 문으로도 보인다. 일렁이는 주황색 선은 불꽃같이 타오르며 관람자를 유혹한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일까.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색은 마치 상상 속의 지옥을 연상시킨다. 너무나 불길하지만 그림에서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는다면 집어삼켜 질 것만 같다.

Section 5_ Age of Resurrection [부활의 시대]
넓은 방 안에 홀로 걸려있는 새빨간 벽. 그 색은 열정의 뜨거움도, 생명의 밝음도 아니다. 그 붉은 색은 마치 인간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와 같다. 이 작품 아래서 자살한 마크 로스코의 잔영일까. 잔잔한 조명 아래로 손목을 긋고 쓰러져 있는 쓸쓸한 남자의 실루엣이 느껴진다. 붉은색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려 했던 로스코. 그는 결국 그림 앞에서 자신의 삶을 매듭지었고 그의 유작인 한 장의 그림만이 남아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단순한, 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울림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번 로스코전에 가서 그의 그림 앞에 서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