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자신이 다니고 싶어하던 학교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하지 못했다. 빚을 내서라도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등록 후 휴학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친구의 입장에서는 대학교입학이라는 것은 사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1년이 지나 생활의 여유를 찾고 다시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다시 수능을 준비해야만 했다. 게다가 다시 자신이 가고 싶어했던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등록 후 휴학은 몸이 아프거나 군입대를 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 외에는 3주 이상 학교에 나올 수 없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분명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는 결코 병원 진단서나 군영장, 혹은 그밖에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내 친구의 경우 엄연히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돈을 벌어야만 하는 그 친구만의 상황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학교에서 요구하는 ‘객관적’자료를 제시 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그러한 개인적인 상황과 계획을 무시한 전체적인 일괄관리는 단지 행정상 편의를 생각한 관리중심의 사고라 아니할 수 없다.
성인으로서의 한사람인 학생들은 자신의 삶이 자신이 설계, 이뤄나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를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결정들을 학교가 제한한 기한내야 해야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1만 6천의 서로 다른 개체들을 학교의 틀로 묶어 일괄적으로 사고하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등록 후 휴학이 힘든 이유에 대해서는 금전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학교에 접수된 등록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분명 학생이 알지 못하는 신·편입생 선발 등 등록 후 휴학생으로 인해 발생한는 행정적 어려움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다니지 않고를 판단하는 문제는 학생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학교에서 행정적인 어려움, 특히 금전적인 문제 처리의 어려움으로 학생개인의 판단과 사고를 무시하는 학교가 학생개인의 삶 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학생활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영석 (어문2·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