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대학을 지성인의 상아탑이라 한다. 한 국가의 미래를 선도할 동량들이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 나라의 미래는 대학이 배출하는 인력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적인 학문을 익히고, 인성을 배양하는 일들을 대학이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60년대 100달러대의 국민소득에 머물던 우리나라는 IT 혁명을 통해 국민소득 2만달러를 훌쩍 넘었고, 세계 기술과 경제를 주도하는 반열에 올라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나라를 배우고 모방하려고 한다. 아프리카의 르완다는 새마을 운동과, IT 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한국처럼 부강한 나라를 꿈꾸며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부에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신뢰의 문제”다. 서로가 믿고 존중할 수 있는 신뢰가 언제부터인가 무너져 있다. 정부의 발표를 국민이 믿지 않는다. 요즈음 창궐하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발표는 SNS에서 떠도는 메르스 괴담보다도 신뢰도가 낮다. 급격한 경제 성장 속에서 드러난 어두운 면이기도 하지만 지성인들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결과라고 해석된다. 이러한 신뢰의 붕괴가 국가의 존폐마저도 결정할 수 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선생을 제자가 믿지 않고, 부모가 자식을 믿지 않는 기이한 현상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스스로 만든 정책을 외면하고, 인사 시스템을 부정하고 있다. 소비자는 시장이 품질과 가격을 불신하고, 환자가 의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도 사회도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지성인들은 “신뢰 부재”의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심초사해야 한다.
우선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노력으로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신뢰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수강신청을 했으면 학과목에 충실해야 하고, 어떤 약속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는 안정 속에서 발전할 수 있다. 낙하산처럼 임명되는 관리도 갑자기 변경되는 계획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연유로 발생한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기본을 지킴으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사이버 사회에서는 더욱 중요한 덕목이다. 흔들리지 않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자기 이기주의보다는 “우리”를 우선하는 상호 존중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배려와 존중은 신뢰를 담보하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한 이래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시험 감독도 하지 않는다. 결석을 한 경우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선생이 학생을 감시, 감독하기보다는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 형성을 위한 작은 노력이다. 물론, 본의 아니게 불공평한 대우를 불평하는 학생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필자의 선의를 오용하는 일도 생긴다. 그러나, 신뢰라는 더 큰 성을 쌓기 위해 20년을 한결같이 시행해 오고 있는 학자의 고집이라고 믿는다.
신뢰를 추구하는 소수의 지성이 자신의 주위 뿐 아니라, 대학 전체를 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사회까지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성균관의 지성인들에 의해 명륜과 율전의 캠퍼스에서 활발히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성균 캠퍼스에서 시작된 신뢰회복 운동이 붕괴되어가는 우리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