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혜윤 기자 (hyeyoun1130@skkuw.com)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음식을 원한다. 음식과 그 맛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글에는 음식 속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담겨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어느 날, 국내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로 방송과 책, SNS를 통해 대중과 활발한 음식 이야기를 나누는 황교익 칼럼니스트를 만났다.

 

직업명이 다소 생소합니다. 맛 칼럼니스트란 무엇인가요.
맛 칼럼니스트란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야. 정치 평론가, 영화 평론가… 이런 직업 중 하나야. 물론 음식 평론가라는 말을 쓰는 게 가장 쉽겠지. 그런데 나는 ‘음식에 대해 평론할 것이 있나?’는 생각이 있었어. 그렇다고 내 글이 식당 소개하는 글도 아니고, 음식을 먹는 사람과 사회에 대해 관찰하고 설명하는 글을 쓰니까 직업에 대한 적당한 명칭이 필요했지. 제대로 된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경향신문 기자가 나에게 지어준 이름이야. 사실 별로 좋은 이름은 아니야. ‘맛’이라는 우리말에 ‘칼럼니스트’라는 외국어가 붙어있는 조합이 썩 좋지는 않아. 그래서 외국에선 보통 이런 일을 ‘food writer’라고 해. 그런데 그 말도 나한테 별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이름이라는 것이 원래 그래. 잘 안 맞아.(웃음)

음식전문기자가 된 내력에 대해 들어보고 싶은데요.
학교 다닐 때 내 꿈은 글쟁이였어. 우리나라에서 글쟁이가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학을 하는 것을 의미해. 나도 비슷했어. 시인이 되고 싶기도 하고, 소설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나라엔 유명한 시인, 소설가들이 너무 많아. 누구나 아는 문학가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글쓰기를 해보자고 결심했어. 그리고 92년 무렵에 음식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지. 왜? 아무도 안하고 있었으니까. 경쟁 상대가 없어. 내가 쓰면 그냥 되는 거야. 내 이야기를 충분히 잘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거지.

황교익은 음식에 ‘문화’를 엮어내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음식 문화라는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문화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음식 문화가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어. 사람들은 보통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두고 음식 문화를 즐긴다고 말하지. 하지만 나는 그 행위가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그 지역 사람은 저런 음식을 먹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얘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문화가 된다고 생각해. 즉, 문화는 하나의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내 삶의 정체성을 확인해 줄 수 있는 무엇’이라고 해석해야 해. 그래야 내가 하는 음식에 대한 문화 이야기를 상대방한테 설명할 수 있어. 나는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발달하지 않았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해. ‘왜 사람들은 이 지역에서 그런 음식을 먹지?’라고 의문을 가지는 행위 자체가 문화인 거야. 저급과 고급은 문화라는 개념에서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 음식을 대하는 사람한테나 붙일 수 있는 거지.

요새 먹는 방송이나 푸드 포르노가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현실에서 맛있는 걸 못 먹으니까 방송으로 대리만족하는 거지. 내가 지금 먹는 음식이 맛있으면 TV에서 무슨 음식을 먹든 관심이 없어. 대리만족은 인간이 모방동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내가 아기를 보고 웃으면 아기는 방긋 웃어. 그게 바로 모방이야. 그것을 통해 인간은 소통을 하고 교육을 하지. 감정까지도 모방하고. 영화에서 배우가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같이 울잖아. 시, 소설, 노래에서도 마찬가지고. 인간은 완벽한 감정모방의 동물이야. 먹는 방송을 보면 음식은 잠깐 보여주고 먹는 사람을 담아내. 내 입에 음식물은 들어오지 않지만, 사람들이 “맛있어요, 최고에요”하는 것을 보고 침을 흘려. 내가 먹은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지는 거지. 그런 것을 포르노라고 해. 실제로 내가 섹스를 하지 않는데 그것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잖아. 음식도 똑같아.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큰 문제로 ‘전통음식’에 대한 담론과 ‘식품 영양학자’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요.
전통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날로부터 내려와 현재의 사람들도 즐기는 양식 또는 정신’을 뜻해. 현재에도 즐기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박물관에 있는 유적에 불과할 뿐이야. 조선 후기부터 시작해 지금은 모든 사람이 즐겨 마시는 이 커피를 두고 전통인가 아닌가를 판단해서는 안 돼. 이를 마시는 관습, 즐기는 정신, 평소 마시는 양식이 전통인 거야. 전통을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생각해야지.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음식으로 신선로, 궁중 떡볶이, 설렁탕 등을 꼽아. 케이크, 빵은 전통음식에서 제외되지. 그렇다면 100년, 1000년이 지나도 이 구분이 그대로일까? 이런 구분법은 자연과학에서 철과 비철을 나누는 방식의 분류지 인문학적 분류법이 아니야. 인문학의 기본은 세상은 변한다는 거야. 그 변화에서 규칙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해 예측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 이것이 인문학이지. 전통의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어.
영양학자는 우리가 옛날에 비해 건강한 음식을 못 먹고 있다는 식으로 말해. 그런 거 없어. 현대사회의 음식은 영양 균형이 모두 맞춰져 있지.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 알 수 있잖아. 조선은 평균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다고 해. 조선의 나이로 보면 나는 골방에서 늙어가는 할아버지야. 물론 의료 발달의 작용도 있지만, 이는 영양 상태가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런데 거기에서 무슨 영양 이야기를 더 하느냐는 거야. 우리는 충분히 잘 먹고 살고 있어. 건강에 나쁜 음식이 있다면 국가에서 알아서 제어하게 돼 있어. 그래서 농식품부가 있고, 식약청이 있는 거지.

▲ ⓒ알라딘
▲ ⓒ알라딘

 

 

 

 

 

 

 

 

 

블로그, 캐스트의 글을 보면 ‘일본’의 음식과 관련된 얘기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 중 일본의 음식을 비교해서 얘기하는 이유가 있나요.
일본의 밥상구조는 한국의 밥상구조와 똑같아. 밥, 반찬, 국이라는 구성으로 돼 있지. 이 구성으로 일본식으로 하나 차리고, 한국식으로 하나 차려서 서양 사람에게 보여주면 구분 못 해. 그만큼 유사하다는 거지. 우리는 일본과 정치적으로 갈등관계에 있지만, 음식 문화로 보면 형제야. 간이 세거나 양념이 많다, 이 정도만 달라. 그러니까 비교를 해야 해. 그래야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있지. 프랑스나 중국 음식을 비교해서 한국 음식의 실체를 알 수 있을까? 불가능해. 1800년대 말 개화기에서 지금까지 10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음식은 크게 뒤섞였어. 음식 문화가 서로 충돌하고 합해지고 교류하는 이 과정을 두 나라가 끔찍하게 겪었다고. 그러므로 이 두 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는지 들여다보는 것, 이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어.

오늘날 맛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하지 마.(웃음) 음식은 공부가 굉장히 중요해. 식재료에 대한 공부, 조리에 대한 공부, 위생 관련 공부, 음식을 어떻게 먹어왔는가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 역사 공부 등 공부할 거 정말 많아. 이것만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어떤 음식인지 실제로 먹어봐야 하잖아. 사람들 하루에 세 끼밖에 못 먹어. 얼마만큼 많이 먹어봤는지는 세월이 그만큼 흘러야 하지. 이것들을 적어도 20년은 갈고 닦아야 음식에 대해 바른 얘기를 할 수 있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야.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잘할 수는 없어. 음식에 대해 글을 쓰려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해. 내가 처음에 이 분야에 발을 들인 이유가 아무도 안 했기 때문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다른 거 해봐. 아무도 안 하는 영역에 들어서 보라고. 지금 당장에 유명해질 생각 다 접고 바닥에서 시작해야지. 최소한 10년은 내다보고 해야 해. 보통의 대학생 때 생각이 다 그래. 당장 각광받는 일에 대해 관심을 두잖아. 그거 아니야. 인생은 길어. 아직 20대잖아. 적어도 10년은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일에 매달려보는 것도 좋아. 

황교익이 생각하는 좋은 음식은 무엇인가요.
최근까지만 해도 좋은 음식이란 식재료가 쥐고 있는 본연의 맛을 제대로 표현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어.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 음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함께 먹는 사람이야. 인간이 모방동물이라고 얘기했지? 이 음식이 맛있으려면 앞에 앉은 사람이 정말 맛있게 먹어줘야 해. “야~ 맛있어” 한마디 하는 것으로 그 음식은 정말 맛있어진다니까. 음식이란 마음을 서로 통하게 하는 도구야. 소통을 돕고 감정모방을 원활히 해주는 것엔 좋은 음식만한 게 없어. 이 생각은 또 바뀔 수 있어. 변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기준과 생각을 계속해서 만들 줄 알아야 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지 마.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한데요.
요즘 방송하는 일이 부쩍 늘어난 것을 여태까지 써놓은 내 글과 생각이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어. 음식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예전부터 유명한 사람이었어. 내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가기도 하고 소통도 많이 했지. 이제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게 됐는데, 그러려면 동종업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과는 어법부터 달라야 해. 더 쉽게 말을 해야 하고 일상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예로 들면서 내 생각을 전해야지. 그래서 더 힘들어. 말하는 솜씨도 더 늘려야 하고. 내가 가진 감정과 생각을 효율적으로 모방할 수 있게끔 말야. 사실 이건 스킬이거든. 그래서 그런 공부를 더 해야지. 대중과 호흡하는 방법에 대해 궁리도 해야 하고. 그거 외에는 없어.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20년이 앞으로 해야 할 길과 똑같아. 음식을 통해서 세상을 보겠다는 거지.

 

ⓒtvN 방송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