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풀리는 세상 - 기자가 읽은 책

기자명 허옥엽 기자 (oyheo14@skkuw.com)

200여 년 전 영국의 인구통계학자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인류는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구론』의 핵심이 되는 이 주장에 대한 찬반 의견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까지도 분분하다. 지구촌의 어떤 국가는 인구과잉을 고민하고, 또 다른 국가는 저출산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70억 명을 넘어섰고, 유엔은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100년엔 지구촌 인구가 100억 명을 넘어 설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대다수 선진국들은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 이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이며 저출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경제적 동력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부양비용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다. 저출산의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독일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그녀의 저서 『모성애의 발명』에서 저출산의 원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YES24 제공

산업사회 이전의 가족

산업화 이전 시대를 살던 기혼 여성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삶의 소명이었다. 즉, 기혼 여성에게는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산업화 이전의 삶이 경제공동체인 가족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됐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아이들은 가족의 노동력을 보충하는, 그리고 부모의 노후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인식됐고, 사실상 결혼 또한 사랑 때문이 아닌 경제공동체로서의 가족에 기여하기 위해 이뤄졌다. 그 당시 아이들은 독립적 욕구를 가지고 있지 못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한 성인’으로 간주돼 부모는 아이에게 특별한 주목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단지 살아남을 정도로만 보살핌을 받았고, 많은 경우 그냥 방치됐다.

‘가족을 위한 존재’가 된 여성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전근대적인 낡은 관습들이 해체되고, 개인의 자율성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성은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으며, 여성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정의 틀 속에 갇히게 됐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일터와 생활공간이 분리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직접적인 활동영역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본성에 대한 관념까지도 구분됐다. 즉, 활동적이고 추진력 있는 남성은 일터로 출근을 해야 하고, 온순하고 겸손하며 감성적인 여성은 가정에 남아서 생활공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은 점점 눈에 띄지 않고 언제나 준비돼 있는 ‘가족을 위한 존재’가 되어갔다. 

‘발명’된 모성애

여성의 활동영역이 점차 가정으로 국한되면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성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고, 전문적인 육아 지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이들은 점차 나름의 욕구와 권리를 지닌 독립적 인격체로 간주됐다. 이와 더불어 시장 법칙에 의해 조종되는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교육이 중시됐고, 계몽주의 아래 진보의 믿음이 확산되어 인간의 ‘본성’ 또한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졌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진보를 구현할 가장 좋은 ‘활동영역’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아이들에게 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양육이 시작되자, 어머니의 역할은 점점 더 ‘여성의 가장 고유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때부터 여성은 본질적으로 모성을 바탕으로 정의됐으며, 이를 정당화하는 생물학적·문화적 신화가 유포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의 유전자에 내포되어 ‘본능’이라고 여겨졌던 모성애가 ‘발명’된 것이다.

여성을 가정 밖으로 이끈 ‘정신적 궁핍’

어머니 역할은 하나의 직업으로 변화했고, 여성은 신성한 어머니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여성들은 점점 자기 일이 없는 삶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됐다. 이와 동시에 여성들의 교육이 중요해지고, 여성 운동이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집 밖의 직업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가정에 매여 있던 여성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여성은 일터에 뛰어들어 직접 돈을 벌 수 있게 됐고, 자신의 주장과 권리를 더 많이 관철시킬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인격을 인식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것’과 ‘어머니가 되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된다.  여성 개인의 욕구와 어머니 역할이 충돌하게 된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자녀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이때가 바로 독일 사회에서 출생률이 처음으로 감소한 19세기 말이다.

소명에서 선택이 되어버린 출산

사회가 고도로 산업화되면서 여성이 받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는 광범위하게 확대됐고, 여성의 직업 활동 또한 당연해졌다. 고도화된 산업사회는 자녀 교육의 흐름 또한 변화시켰다. 의학과 심리학, 교육학이 발달하면서 아이는 점점 더 만들어지는 존재가 됐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목표가 됐다. ‘자연발생적인 유년기’가 점점 종말을 맞이하고, 대신에 ‘유년기의 연출’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아이를 돌보는 일에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이 소요돼 양육은 더욱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경구피임약이 출시되면서 섹슈얼리티와 생식의 역사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피임약은 여성들이 ‘아이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 언제 가질 것인지, 몇 명을 출산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는 ‘여성의 인생’과 ‘어머니 되기’를 분리시켰다. 이처럼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여성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 경제적 자원을 투입해야하는 자녀 양육보다는 자신의 독립을 선택했고, 독일 사회는 제2차 출생률 감소의 시기로 접어든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더 평등해지는 것’

이후 독일의 출생률 감소 경향은 계속해서 심화되어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현재까지 출생률 감소가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게른스하임은 △난임을 초래하고 있는 생식의학 상품들 △신자유주의의 유연성과 탈규제가 노동계를 강력히 파고들고 있는 점 △이주여성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한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 등을 덧붙여 지적하고 있다. 게른스하임은 남성과 여성이 ‘더 평등해지는 것’을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출산과 양육이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만 남아 있는 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탁아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큰 시사점을 제시한다. 우리나라와 독일은 가부장적 제도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는 보수적인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비록 역사나 정치, 경제와 문화적 배경은 매우 다르지만 '모성'을 둘러싼 남녀의 역할, 자녀의 문제, 가족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놀랄 만큼 유사하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도입, 민간보육시설 활성화 방안 등 여러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 정책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여성이 출산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 더욱 평등하게 양육을 해야 한다는 게른스하임의 진단과는 궤를 달리하는 방안이다. 저출산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요즈음, 게른스하임의 진단은 우리로 하여금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국가적 문제를 외면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의 이기심’에서 찾고 있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여성에게 ‘엄마’라는 딜레마와 모성애의 부담을 지우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