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촌사람들 - 저팔계식당

기자명 강도희 기자 (nico79@skkuw.com)

저팔계 식당 외관 / ⓒ정현웅 기자 dnddl 2004@skkuw.com

숱하게 투정부리던 엄마 밥도 집 떠나면 생각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조차 그런데 국경을 넘어 타지로 온 유학생은 오죽할까. 외국에서 살아본 한국인은 알 것이다. 낯선 냄새, 낯선 소리 속에서 ‘아리랑식당’이나 ‘태극식당’ 같은 한글 간판을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중국 본토 음식점 ‘저팔계식당’은 우리 학교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런 ‘아리랑식당’이다.
인사캠 쪽문에서 내려가다 보면 복스러운 돼지 캐릭터가 웃고 있는 빨간 간판의 저팔계식당이 보인다. 한글보다 한자 '猪八戒餐厅'이 더 크게 써 있다. 정체모를 요리 사진과 함께 중국어로 쓰인 메뉴가 온통 붙여진 입구에 압도된 당신은 처음엔 머뭇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낯선 향신료의 냄새가 안으로 부른다. 내부는 작은 편이다. 1층은 주방, 2층이 식당이다. 8개 남짓한 테이블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말소리를 들어보면 한국인도 있지만 중국인이 더 많다. 중국풍의 도자기 인형이 한 줄로 놓인 창문, 그 뒤로 보이는 풍경은 이미 명륜동이 아닌 베이징의 한 거리 같다.
저팔계식당의 사장 이종석(35) 씨는 중국에 살다 온 적도 없고,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왜 중국 음식점을 차리게 된 걸까. “여자친구를 위해서였죠.” 그의 여자친구 사미미(29, 경영 08) 동문은 중국인이다. 두 사람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됐다. 당시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녀가 중국 본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명륜 새마을금고 근처의 식당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졌다. 그는 타지에서 공부하며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여자친구가 안쓰러웠다. “제가 요리는 못 해도 먹는 것은 굉장히 좋아해요. 중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유창한 한국어로 사미미 씨는 수줍게 말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그녀를 좋아하는 한 남자는 2012년 8월, 저팔계식당을 열기로 했다.

사미미 씨와 이종석 씨 / ⓒ정현웅 기자 dnddl2004@skkuw.com

두 사람은 서울과 경기도의 각종 중국 식당을 방문해 음식과 인테리어 등을 사전 조사했다. 유통업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중국인 주방장도 고용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개장했을 때 손님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첫 주방장이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맛이 없다는 소문이 나자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매출에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주방장을 바꾸자 손님이 늘어났다. 지금은 평일 점심, 저녁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한국 손님들에겐 찹쌀 탕수육인 ‘꿔바로우’가 가장 인기가 많다. 달짝지근한 소스가 촉촉이 벤 껍질 사이로 돼지고기가 씹힌다. 새우, 양고기, 내장을 매콤하게 볶은 요리인 ‘마라샹궈’도 요즘 찾는 사람이 많다. 반면 중국 손님들은 워낙 출신 지역이 다양해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남쪽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북쪽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을 선호한다.
고향 음식이 그리운 사람이 비단 미미 씨뿐일까. 이종석 씨는 “대학생활이나 공부가 지칠 때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 끼 정겨운 밥을 먹고 기운을 냈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저팔계식당에선 되도록 중국 요리 맛 그대로를 살리려 한다. 생각보다 한국인 손님의 반응도 좋다. 맵고 기름진 가운데 느껴지는 오묘한 향, 그 향에 빠진 단골손님도 제법 생겼다. 김치찌개, 된장찌개에 질릴 때 저팔계식당에서의 30분은 가장 간단하고 저렴하게 떠날 수 있는 중국 ‘먹방 기행’이다. “2호점을 내거나, 배달 서비스를 하는 등 매출을 올릴 방법은 많지만 그러면 맛이나 질이 낮아질 수 있으니 하지 않을 거예요.” 욕심을 더 내기보단 정성을 다하고 싶은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서로를 보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 사이엔 정다움이 묻어났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미미 씨 덕분일까, 그녀를 향한 이종석 씨의 사랑 덕분일까. 덕분에 중국 학생들은 집밥의 향수에, 한국 학생들은 여행의 향기에 취해 오늘도 저팔계식당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