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축의금, 과도한 혼수와 예물 등 결혼식의 여러 허례허식 때문에 결혼에 참여하는 혼주, 하객, 부부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
특히 결혼 당사자인 청년세대에게 결혼은 큰 부담이다. 지난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만19∼34살 청년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69.7%의 청년들이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결혼이 꺼려진다’고 응답했다.
하객들에게도 결혼은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월 직장인 500명에게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조사비가 가계에 부담된다’는 응답이 92.4%에 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경조사비 지출액은 가구당(2인 이상) 약 21만 원이다. 한 해에 축의금, 부조금 등 경조사비로만 250만 원 정도를 쓰는 셈이다.


작은 결혼식 하겠다니 엄마가 집을 나가
2013년 5월, 서울 시민청 1호 부부로 결혼한 신혜성(39) 씨는 처음 작은 결혼식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갈 정도로 큰 반대에 부딪혔다. 축의금을 받지 않고 하객 수 100명 정도의 작은 규모의 결혼식을 치르겠다는 딸의 뜻을 당시 신 씨의 부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신 씨는 6개월의 결혼 준비 기간 내내 부모를 설득했다. 신 씨가 부모와 가장 크게 충돌한 부분은 하객 수 문제였다. 적은 하객 수는 곧 줄어든 축의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면서 낸 경조사비에 대한 미련은 부모들이 자녀의 작은 결혼식을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10월 딸을 결혼시킨 한경섭(58) 씨는 딸의 반대로 식장에 축의금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지만, 축의금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못했다. “축의금은 액셀 파일로 기록을 남겨두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민감한 문제”라며 “기성세대 입장에서 축의금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조사비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응답은 41.2%로 ‘유지돼야 한다’(58.8%)보다 적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상부상조의 문화로서 경조사비를 어쩔 수 없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축의금 문제 때문에 신랑,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는 결혼식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시민청 작은 결혼식 프로그램을 기획한 홍익대학교 디자인콘텐츠대학원 이나미 교수는 “하객들이 신랑, 신부 얼굴도 잘 모르면서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 내고 밥만 먹고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제는 부모세대가 축의금 때문에 발생하는 이상한 결혼문화를 깨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녀 결혼 때문에 부모 노후는 ‘휘청’
자녀의 결혼 비용을 대느라 부모의 등골은 휘어진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신랑신부의 부모 즉, 혼주가 결혼 비용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여기에 청년실업문제로 경제적 자립기반이 약해진 청년들이 결혼준비 과정에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지난 2일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부모님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은 비율은 10.4%에 불과했다. 결혼 비용의 60% 이상을 부모가 부담했다는 응답은 43.4%에 달했다. 부모는 자녀의 결혼을 위해 수 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내놓아야 한다. 자녀가 결혼할 때 아들을 가진 부모들의 절반 이상이 결혼비용으로 8천만 원 이상을 지출했으며, 딸을 가진 부모들은 약 70%가량이 6천만 원 이하를 지출했다.
가계저축률이 4%밖에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대다수 가계는 국민연금 외에 별다른 노후수단이 없다. 그나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평균 월 소득 대비 연금수령액 비율)은 45.2%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65.9%)을 크게 밑돌고 고갈위기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결혼은 청년실업 문제와 100세 시대 부모세대의 노후문제가 얽힌 복잡한 사회문제가 됐다”며 “이제 결혼의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결혼 당사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의사를 존중한 작고 뜻깊은 결혼문화를 확산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