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

기자명 이성경 기자 (stellask@skkuw.com)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말한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고 세계라고. 어떤 도시에 처음 갈 때에 그 도시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러나 수줍은 이는 여행을 가서도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호텔에서 보는 여행책자엔 현지인은 가지도 않는 맛집만이 가득하다. 당신이 그 도시의 진짜 모습을 만나고 싶다면, ‘휴먼즈 오브’에 ‘좋아요’를 누르자.

'휴먼즈 오브'의 시작

2010년 8월 뉴욕, 이상한 사진가 한 명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브랜든 스탠턴,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실패한 채권투자자였다. 사진과 뉴욕을 사랑하던 그는 매일 거리를 쏘다니며 찍은 사람들의 사진을 페이스북과 *텀블러에 올렸다. 그의 인터뷰이는 ‘안젤리나 졸리’도 ‘오바마’도 아닌 그냥 슈퍼 아저씨와 빵집 아줌마였다. 이것이 ‘휴먼즈 오브 뉴욕’(이하 HONY)의 시작이다. HONY의 눈으로 본 뉴욕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채로우면서도 따뜻했다. 시작한 지 3년 만에 HONY의 팔로워 수는 400만을 넘었고 10월에 발간된 책은 곧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스탠턴의 ‘휴먼즈 오브’ 프로젝트는 현재 런던, 빈, 방콕 등 수십 개의 도시에서 진행 중이다.

ⓒ알라딘

서울 사람을 위한 서울 사람 이야기, '휴먼즈 오브 서울'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이 다르다고 가지는 감성까지 다르지는 않다. 2013년 겨울, 서울에도 ‘휴먼즈 오브’가 왔다. ‘휴먼즈 오브 서울’(이하 HOS)의 정성균 편집장은 HONY를 우연히 보고 쿵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대학원생이던 정 씨는 곧장 친구이자 사진가인 박기훈 디렉터에게 연락해 HOS를 시작했다. 처음엔 2명이었지만 현재는 6명의 멤버가 활동 중이다. HOS의 멤버로 지원하려면 인터뷰어는 5개의 샘플 인터뷰와 사진을, 포토그래퍼는 10개의 샘플 사진을 찍어 와야 한다. 여기서 모든 인터뷰와 사진의 대상은 낯선 사람이다. 낯선 사람에게 속사정을 끄집어내는 일은 생각만큼, 아니 사실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다. 하루에 한 명의 인터뷰도 따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도 있다. 그래서 그들에겐 한가해 보이는 사람이 1순위 인터뷰이, 삼청동과 대학로가 1등 인터뷰 장소다. 힘겹게 인터뷰가 시작되면 가벼운 물음으로 말문을 튼다.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고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최근에 행복했던 적은 언제인지, 요즘 고민은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답을 끌어내는 건 인터뷰어의 몫이다. 오늘도 그들은 거리에 나가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넨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이세요?”

ⓒ'휴먼즈오브서울' 페이스북

너는 내게 위로다 

“희미한 빛 아래 돌계단에 앉아 인터뷰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인상 깊었던 인터뷰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HOS의 인터뷰어 강리나 씨는 입을 열었다. “말하기를 좀 주저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천천히 심사숙고해서 말을 해주었고 어느 순간 보니 얼굴엔 눈물 자국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진중하고 진실하게 말해주고 있었어요.” 낯선 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HOS의 인터뷰에 응하는 건 그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기 때문이다. HOS의 박기훈 디렉터는 'HOS가 공감과 위로의 안식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HOS의 타임라인에는 개개인의 개성과 삶이 묻어있다. 그들 삶에는 인간이라면 가지는 공통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우정, 슬픔, 사랑 심지어 잔인함도 때로는 우리를 위로한다. 결국,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그걸 읽는 우리도 다 같은 마음이다. ‘위로받고 싶다.’ 내가 점이 되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은, 그래서 소주 한 잔이 절실한, 그런 날이 있다. 그 때의 삶이 너무 차가워도 외로움에 울지는 말자. 우리는 다 서로에게 위로다.
 

*텀블러=2007년 설립된 마이크로블로그 플랫폼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일반 블로그의 중간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