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범준 기자 (magic6609@skkuw.com)

‘나는 이 속된 도시가 좋다. 여기에서 살아갈 것이다.’ 소설가 김중혁의 단편소설집『일층, 지하 일층』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소설 구성의 3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한다면 김중혁 소설의 3요소는 인물, 사물, 도시이다. 그동안 도시와 사물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뤘던 작가가 인물에 집중한 첫 연애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출간했다. 김중혁은 소설 외에도 에세이스트,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DJ, 문학웹진 ‘소설리스트’ 관리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재다능한 도시의 소설가 김중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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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제목부터 인상적인데, 제목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소설가에게 ‘가짜 팔’은 곧 이야기다. 이야기는 비록 가짜, 허구이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포옹으로 다가갔을 때 중요한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여러 해석중 하나 일 뿐이고 각자 해석 하는 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첫 연애소설집이다. 사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사랑을 규정하지 않으려고 이 긴 소설을 쓴 것이다. 사랑에 관한 정의는 많지만 소설가는 그런 정의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정의를 내리는 순간 사랑이란 단어는 굉장히 협소해진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남녀 관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싶었다. 특히 연애 그 자체보다는 연애가 시작되기 전 혹은 그 이후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막상 연애를 할 때는 그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항상 연애가 시작되기 전, 끝난 후는 관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에 소설집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다뤘다.

인물을 구상할 때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평소에 사람들 관찰을 많이 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부분부분을 가지고 와서 모자이크처럼 새로운 인물을 구성한다. 예전에 봤던 어떤 사람의 귀, 목선 같은 것을 조합해서 하나의 인물을 만드는데 그 과정이 재밌다. 이 인물을 이야기 속에 던져놓으면 실제로 그 이야기 속에서 인물이 살아 움직인다.

공장 탐방기인 <메이드 인 공장>, 소설집 <펭귄뉴스>를 보면 사물이 항상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세대다. 그걸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사물이라고 생각했다.

<일층, 지하 일층>은 도시가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도시라는 테마는 앞으로도 중요하게 다룰 것 같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 재밌다.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서울만큼 흥미로운 도시는 없다. 한쪽에서는 엄청난 첨단을 다투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급성장에 따른 폐해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내게 서울은 항상 흥미로운 도시이고 흥미로운 텍스트다.

지난 7월 출간된 김중혁 작가의 네 번째 단편소설집 가짜팔로 하는 포옹

ⓒ문학동네

한국일보에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의 비밀’이라는 칼럼을 연재하셨는데 계기가 있다면?
우리는 소비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창작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이 창작의 영역에 속한다. 일상의 사소한 창작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보충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창작을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기술의 변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창작기술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 궁금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매일 정해진 양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하루키나 헤밍웨이가 대표적인데 작가는 어떤 스타일인가?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소설을 쓸 때 몰아서 쓸 때가 많다. 소설을 쓰는 자아는 굉장히 변칙적이고 신경질적이고 통제가 안 된다. 그 자아는 사회 부적응자이기 때문에 밖에 잘 안 나온다. 대신 밖에서 돈을 버는 자아는 굉장히 성실한 편이다. 에세이를 청탁받으면 마감에 절대 늦지 않고 일을 맡으면 준비를 철저히 한다.

좋은 문장은 어떤 문장인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문장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튀지 않으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문장들이다. 수사나 비유가 좋은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철도레일을 받치고 있는 침목 같은 문장들을 좋아한다.

‘소설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소설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소설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소설은 활자만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계속 읽으면서 자기 간섭이 일어난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작가와 거리감을 느꼈다가 어느 순간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렇게 거리조절이 잘 안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는데, 그것이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양한 매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책만 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재미를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최근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논란과 관련해 문학계가 떠들썩했다. 소설가로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복잡한 심경이다.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꺼내야할 이야기인데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다. 언론의 보도행태 때문에 표절이냐 아니냐하는 문제가 중요해져버렸다. 표절에 관해 논하기 전에 얘기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뭔가를 얘기를 하려고 하면 ‘일단 표절인지 아닌지 밝히고 시작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에 누구든 말을 꺼내기 힘든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표절 논란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신인 작가들이 묻혀버리는 게 너무 안타깝다. 안 그래도 적었던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 일을 통해 더 사라지게 되는 것 같다.

웹진 ‘소설리스트’를 운영하시면서 매주 소설을 추천하고 있다. 학우들에게 책 한권 추천한다면?
책 추천은 사실 매번 요청을 받는데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우연히 들어본 음악이 더 기억에 오래 남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막 읽다가 재밌는 게 있으면 그 부근을 파면된다.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을 했었다. 반납한 책들을 서가에 꽂아주는 일이 전부였고 하루종일 책보는 게 일이었다. 세계문학전집을 보면서 좋아하는 작가를 찾고 그 작가와 비슷한 다른 작가들을 찾는 일을 계속 했다. 그렇게 해서 건졌던 작가가 레이먼드 카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커트 보네거트 같은 작가들이다. 그때 읽은 책의 자산으로 지금까지 작가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권의 책이 아닌 그런 식의 독서법을 추천하고 싶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와 진행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이하 빨책)이 이제 햇수로 3년이 넘었다. 매회 평균 다운로드 15만 건을 기록하고 빨책에 소개된 책들이 베스트셀러 차트에 역진입 하는 등 많은 일이 있었는데?
소설가가 되기 전에 거쳤던 여러 직업처럼 결국엔 빨책도 돈을 벌기위해 하는 일이고, 재미가 있어서 지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파급력이 무척 크다는 점이다. 공개방송이라서 불가피하게 예전에는 자주 볼 수 없었던 독자들과 직접 마주치게 되는데 작가로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무엇보다 이동진이라는 좋은 친구가 생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얻었다는 게 가장 좋다.

독자를 직접 만날 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했는데?
물론 독자를 만났을 때 반가운 점도 있지만 소설가는 자기 소설에 대해서 말을 적게 하면 적게 할수록 좋다. 내게는 소설 외적인 일로 아무리 바빠도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런 것이 있어야 소설을 쓰는 자아가 붕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창작물은 유독 소설가와 밀착돼있는 것 같다.
외부의 영향으로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이 안 바뀌었으면 좋겠다. 자기 고집대로 소설을 쓰려면 경제적으로 위축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 과외활동도 하는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돈이 안 되는 일이거나 무모해 보이는 일이라면 그걸 지켜주기 위해서 다른 자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타협은 불가능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자아를 축소시키는 순간 삶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자아를 잘 살려두고 다른 자아를 통해 스스로를 잘 돌본다면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떤 이미지의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한 명쯤 있으면 좋은 작가. 모든 작가들에게는 자기만의 스타일과 양식 같은 게 있는데,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 혼자서 조용히 자기만의 세계를 잘 꾸려나가고 싶다. 작지만 외부의 침입에 굉장히 강력한 세계. 그런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홍대 빨간책방 카페 3층 공개 스튜디오에서 김중혁 작가가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빨간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