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나는 일에 대하여
홀로 떠나는 일에 대하여
  • 성대신문
  • 승인 2015.09.16 15:42
  • 호수 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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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김훈은 그의 자전거 풍륜을 타고 전국 산천을 돌아다녔다. 그 후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내었다. 그는 책 안에 여행이라는 단어를 쉽사리 언급하지 않고,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 또한 내게 있었던 여행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되는 취업 준비와 공부,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취업준비생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 인생 마지막 여름방학을 이렇게 끝낼 순 없었다. 내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제주도행 티켓을 샀다. 제주도 스쿠터 여행을 앞두고 몇 날밤을 설레어 했다. 제주도는 쉽사리 만나볼 수 없었던 섬이었다. 일기예보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맑다고 호언장담하였다. 늘 그렇듯, 예보는 적중하지 못했다. 마침 태풍 고니가 제주도에 날 반기러 온 것이다. 출발 하루 전날까지 비바람이 걱정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김해공항은 빗소리로 웅성대었다. 선글라스와 선크림은 괜히 짐만 되었다. 폭풍이 만들어낸 험한 기류를 뚫고 비로소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거금을 들여 렌트한 스쿠터는 바다 빛을 닮았다. 장롱 속에서 꺼내온 운전면허증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사장님에게는 자전거를 잘 탄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자전거 핸들을 잡아본 지도 수년이 넘었다. 스쿠터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스쿠터는 비에 젖은 도로 위로 나를 집어 던지지 않고, 내가 원하는 곳에 다다르게 해주었다. 때론 아무 이유 없이 멈춰 서서 쉬기도 했다. 가고 싶은 데로 가보는 것이 얼마 만이었더라. 늘 “빨리빨리”를 외치며 쉼 없이 달려왔던 나였다. 텅텅 빈 도로를 달릴 때,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이 온몸에 감겼다. 땀과 함께 스트레스도 증발하는 것 같았다. 처음 다짐했던 안전운전은 일탈 속에 잊혀갔다. 마지막 밤, 떠들썩한 바비큐 파티에선 이름도, 출신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반가워했다.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요구도 하지 않았다. 과거의 사슬은 잠시 잊혔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줍게 드러내기만 하면 되었다.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이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오래된 친구처럼 편했다. 파티를 뒤로한 채 만난 협재의 고요한 밤바다는, 조용히 나를 비추었고 세상이 없는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이라는 것은, 다른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고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의 여행 끝에 내게 남았던 것은,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환경과 사람, 잠자리도 다른 외딴곳에 나를 던졌을 때, 그간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차갑게 무시해왔던 나의 감정과 성향, 욕구들과 수줍게 인사했다. 2015년 여름, 비에 젖은 제주도에서 나는 나를 만났다. 태풍을 뒤로한 채 수원으로 돌아왔을 때, 몸도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간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수북이 쌓여있었으나, 내게는 새로운 에너지와 마음가짐이 있었다. 알고 보면 이 문제들은 조물주가 나의 태도를 시험하는 것이리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진 도저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만 가지 환경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다음 여행을 또 계획해본다.

 

천재현(시스템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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