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옥엽 기자 (oyheo14@skkuw.com)

내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친구’가 하나 있다. 사실, 친구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할 만큼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가 까다롭기까지 해서 그 친구에게 쉽사리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의 근황을 전해 듣게 됐다. 오랜만에 친구의 소식을 들으니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언제나 그랬듯 그 친구의 목소리는 단조로웠고,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괜스레 민망해졌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였다. KIST는 보안이 철저한 국가연구기관이어서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간단한 신원 조회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방문자 카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됐다.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는 여전히 어려웠고, 우리는 여전히 어색했다. “찾아오느라 고생 많았어.”라는 한 마디가 우리 사이를 오가는 팽팽한 정적을 깨뜨렸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천천히 현재로 항해했다. 우리의 만남이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등학생 시절 비문학 지문에서 그 친구는 꽤나 내 마음을 썩였다. 3년, 아니 정확히 4년 동안이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던 그 친구를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 친구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그 친구가 말해준 ‘4D 프린팅’은 가히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찰나, 불현듯 내게 든 생각은 ‘그 친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를 멀리하고 소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은 순전히 닫힌 마음으로 꽁꽁 무장한 ‘나’였다. 친구에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변한 것이라고는 오직 내 ‘열린 마음’뿐이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카톡’하는 알림 소리와 함께 전달된, ‘이제라도 마음 열어줘서 고맙다’는 친구의 메시지에 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차가운 편견은 그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