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지원 기자 (wontheph7@skkuw.com)

책이 가득 찬 도서관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평한 지식의 보고다. 그러나 어떤 지식은 글로 남기기보다 마주 보고 전달하는 편이 낫다. 도서관은 이런 지식을 포기해야만 할까? 2000년 덴마크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은 말하는 책, ‘사람책’을 고안해 이 딜레마를 해결했다. 읽고 싶은 책을 빌려 가듯 만나고 싶은 사람을 빌려 가는 ‘사람도서관(Human Library)’의 시초다. 사람 간의 대화를 통해 지식과 경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다. 덴마크 청년 비정부기구 'Stop The Violence'가 뮤직페스티벌에서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42개국으로 퍼져나갔다.
국내에서는 2010년 국회도서관을 시작으로 지자체에서 하나둘 도입했다. 단발성으로 개최하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특정 지역을 넘어 크게 확장되지는 못했다. 구성도 기관에서 초빙한 인물을 만나는 정도로 그치는 곳이 많았고, 편안한 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었다. 위즈돔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위즈돔은 ‘사회적 자본 공유 기업’을 자처한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 구성원 각각이 가지고 있는 삶의 경험과 지혜, 그리고 그들 간의 신뢰와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사회적 자본은 무형이지만, 살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의 성장을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형이기 때문에, 불평등이 있어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위즈돔 설립자이자 사회적 벤처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상엽 대표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지역 및 경제 수준의 격차에서 비롯한 이런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만남’을 중개하는 사회적 기업 위즈돔은 이렇게 탄생했다.
위즈돔 가입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종합해 ‘사람책’으로 등록한다. 유명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가입자들은 다른 ‘사람책’들을 보다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써서 만남을 요청하거나, 다른 사람이 개설한 만남에 참여한다. 혹은 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스스로 만남을 개설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성사된 만남은 일반적인 강연과는 다르다. 대등한 관계에서 친근하게 이야기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첫 만남이 순조로웠다면 구성원을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쌓고 공유되는 무형의 사회적 자본들은 결국 위즈돔 회원 개인들의 발전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위즈돔은 초기에는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만남이 개설되었지만, 지금은 △대구 △대전 △부산 △제주에서도 사람들이 모인다. 새로운 서비스도 계속 구상하고 있다. 2013년 개최한 ‘인스파이어드@제주’는 문화예술, IT 등 사회 전반에서 창조적 혁신가로 활동하는 100인을 초청해 자유로운 교류와 토론을 이끌었다. 연사와 청자의 구별이 뚜렷한 기존 컨퍼런스 형식을 탈피, 참가자 모두가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참여하는 자리를 만드는데 성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교육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다문화 사회를 목표로 기획한 플랫폼 ‘점프’는 전용 페이지를 구축해 130명의 사회인 멘토단을 통해 대학생들에게 △1대 1 멘토 연결 △소그룹 멘토링 △특강 등을 제공한다.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청소년 진로교육 프로그램인 ‘위즈돔@마이스쿨’이 준비되어 있다. 중, 고교의 동아리 차원에서 여러 학기에 걸쳐 사람책을 만나 진로상담에 도움을 받는다. 그 밖에 △다음과 함께하는 ‘스토리볼’ △서울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월간 휴먼라이브러리 △서울시와 함께하는 ‘음식남녀’ 등 정부·기업과 협력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인연에 목마른 비영리기구 지원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위즈돔은 공익적인 목표를 가진 비영리 단체·개인의 홍보와 운영을 돕고 수수료를 면제한다. 그 결과 모여든 각양각색의 비영리기구들은 위즈돔의 독자들에게 더욱 많은 선택지를 준다. 지금도 계속 보유 장서를 늘려나가고 있는 위즈돔의 책꽂이가 얼마나 더 풍성해질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