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아 (ja2307@skkuw.com)

현재 성북구에서 살고 있는 성신여대 서양화과 이유진씨의 룸메이트는 70대인 주인 할머니, 80대 작은 방 할머니, 대학원생 언니이다. 이 색다른 동거는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대학생-어르신 주거 공유 프로젝트인 ‘룸 셰어링’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타인과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그들의 생활기를 들어봤다.


룸 셰어링 사업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대학 합격 후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원래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다. 기숙사는 11시 반이면 문이 잠기기 때문에 미술 전공이라 야간작업이 잦은 나는 걸핏하면 밖에서 밤을 지새웠다. 결정적인 문제는 기숙사 내 난방 기구 사용이 금지돼 있어 벌벌 떨며 한겨울을 보냈던 것이었다. 고민하던 중 우연찮게 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성북구 룸 셰어에 관한 글을 보았다. 낯선 사람이랑 함께 산다는 것이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됐다. 하지만 기숙사는 수용인원도 적고, 학교 주변 자취방은 너무 비싸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신청 후 입주 과정이 궁금하다.
룸 셰어링에 신청한 후 구청에서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할머니 혼자인 가정을 원하는지 등을 물으며 의견을 많이 반영해줬다. 이후 구청 직원들과 집에 방문하여 어떤 방을 쓰게 될지, 주인 어르신은 어떤 분인지 확인도 했다. 마음에 든다고 하면 어르신과 매칭이 되고 비로소 입주하게 된다. 원래 임대료는 보증금 없이 월 20만 원 정도인데, 이 집은 넓은 편이라 관리비를 포함하여 월 30만원으로 어르신과 합의했다. 주변 시세에 비해서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더욱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다.

어떻게 다른 세 분과 함께 살게 되었나.
주인 할머니 혼자 계신 집에 작은 방 할머니가 세 들어 살고 계셨다. 그리고 나와 대학원생 언니가 룸 셰어링 사업에 신청해서 들어오게 되었다. 할머니께선 룸 셰어링 담당자의 남편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같은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참여하셨다고 한다. 요즘은 할머니께서 남는 방에 집이 없는 학생들이 싼 값으로 함께 살게 되어 정말 좋다고 하신다. 다른 학생을 한 명 정도 더 받고 싶다고도 자주 말하신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데, 생활의 제약은 없는지.
생각보다 사생활이 정말 잘 지켜진다. 각자 방을 따로 사용하고 부엌과 화장실 정도만 공유하기 때문이다. 설거지나 빨래는 무조건 자기 것은 자신이 한다. 각자 방만 청소하면 나머지는 할머니께서 관리하신다. 냉장고나 세탁기, 건조대도 사용하게 해주시는 등 많이 배려해주시기도 한다. 심지어 남자친구도 자주 놀러온다. 이렇게 미리 얘기만 한다면 특별히 간섭 받는 부분은 없다. 부모님은 아마 어르신이 내 생활에 제재를 가하시는 것을 기대하셨겠지만 오히려 원룸에서 사는 것보다 더 자유롭다.

함께 생활하며 좋은 점은 무엇인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때가 많다. 주로 어르신께 전자기기 사용법을 알려드린다. 할머니께선 밤에 종종 인터넷 고스톱을 치시는데 “유진아, 인증번호를 넣으라는데 이게 뭐니?”라며 자주 부르신다. 이외에도 와이파이 사용법이나 전화요금 고지 내역 확인도 종종 도와드린다. 요리할 때 거들어주시거나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가까운 음식이 있으면 알려주시는 등 나도 할머니께 많은 도움을 받는다. 작은 방 할머니는 큰 거울이나 조그만 화분을 가져다주시고 “분위기가 살았다”며 좋아하시기도 했다. 몸이 안 좋을 때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도 어르신들이 많이 챙겨주신다.

당연히 불편한 점도 있을 텐데.
우선 생활 패턴이 정말 다르다. 나는 주로 수업이 오후에 있어 열두시 이후에 일어나지만, 할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시고 저녁 9시만 되면 집 안의 모든 불을 끈다. 그러다보니 사실 다 같이 모이는 시간은 별로 없다. 입맛도 많이 다르다. 전에 다 같이 삼겹살 파티를 하려고 대학원생 언니와 고기를 집에 잔뜩 사들고 갔던 적이 있다. 하지만 작은 방 할머니는 위가 좋지 않다며, 주인 할머니는 원래 고기를 안 좋아하신다며 드시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와 둘이서 그 많은 고기를 다 먹었다.
또 내 방은 원래 창고여서 할머니의 물건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면 할머니께선 물건들이 젖을까봐 한밤중에도 방문을 벌컥 열어 확인해보시곤 했다. 지금은 많이 해결됐지만, 개인적 공간을 더 존중해주셨으면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 할머니가 절약이 너무 몸에 배여 있으시다는 것이다. 세탁기를 돌릴 때도 헹굼을 하던 중간에 꺼내서 다음 빨래를 넣어야 하고, 탈수도 하지 않으신다. 설거지 할 때 주방 세제를 쓰는 것도 굉장히 싫어하신다. ‘그렇게까지 아낄 필요가 있을까?’싶지만 굳이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편이다. 아무래도 가족이 아니다보니 서로의 방식을 지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을 더 연장할 생각이 있나.
원래 계약 기간은 1년인데, 가능한 오래 여기서 살고 싶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자취와 기숙사와 비교해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