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3, 문화인과의 동행 -한복여행가 권미루

기자명 최소현 (thonya@skkuw.com)

사방이 흰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 산 언덕에 황금빛 누비저고리와 붉은 고름이 바람에 나부낀다. 설산과 한복이라니 생소한 조합이지만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어우러져 숨 막히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패션모델도 전통문화 종사자도 아닌 한 여성. 한복을 입고 전국 방방곡곡을, 또 세계 각지의 명소를 다녀온 한복여행가 권미루 씨를 만났다.

 

권미루 씨 사진|ⓒ안상훈 기자 tkd0181@skkuw.com

명절이나 결혼식 등에서만 볼 수 있는 한복이 여행의 파트너가 됐다. 한복여행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처음부터 한복을 입고 여행을 다니려던 생각은 아니었어요. 한복을 갖고 싶어서 제게 맞는 맞춤한복을 한 벌 장만했는데, 일상생활에서도 계속 입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저기 입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어요. 한복을 입고 여행을 다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복을 입고 다녀온 여행지는 어디 어디인가.
첫 여행지는 북촌한옥마을이었어요. 2박 3일 동안 한복을 입은 채로 혼자 북촌 일대를 돌아다녔죠. 두 달 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전주에 놀러 가서 또 한복만 입고 생활을 했는데 자신감이 붙었어요. 멀리 나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그 다음 해에 바로 혼자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한복여행의 나날이 시작됐어요. 그 외에도 국내에서는 남산골 한옥마을, 외암 민속마을, 화성행궁, 제주도를, 국외로는 이탈리아, 스페인, 네팔, 몽골 등을 다녀왔네요.

여행 중에 시선을 많이 받게 될 것 같다. 한복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인기가 많은 편이죠. 저는 외국에 나가서 한복을 입을 때 이게 한국의 옷이라고 절대 먼저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눈에 띄고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예쁘다, 같이 사진 찍자, 어디서 왔느냐는 등의 말을 건네요. 집안 대대로 숙박업을 했다는 이탈리아의 할아버지도, 몽골에서 만난 이스라엘 모녀도 모두 한복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며 다가왔죠.

일반 기성복 대신 한복을 입는 여행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복을 입으면서 스스로 예뻐 보이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보는 사람과도 대화의 물꼬를 틔워주고, 자연스레 나를 알릴 수도 있죠. 여행지에서 한복은 곧 새로운 사람과 이어지는 매개체에요. 관계를 확장하는 옷이자 나를 설레게 하는 옷이죠.

여행 지역에 따라 한복의 원단이나 디자인, 색깔도 달라지나.
보통 우리가 예식용으로 많이 맞추는 원단이 본견 옷감인데요. 빛깔이 무척 곱지만 수분에 약하기 때문에 물세탁을 할 수 없는 등 관리가 굉장히 까다로워요. 그래서 여행용으로는 화학섬유 옷감을 주로 추천하는 편인데 종류가 다양해요. 옷감에 따라서 시원한 것도 있고 통풍이 안 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여행지의 날씨에 따라 골라야 하죠. 더운 나라에 갈 때는 소위 ‘시스루저고리’로 알려진 홑겹 저고리를 입어요. 아니면 아예 저고리 밑부분을 직접 잘라서 입기도 하구요. 추운 나라에 갈 때는 겨울용 옷감인 모본단이나 양단원단을 주로 사용하고, 누비저고리나 누비조끼를 덧입으면 더 따뜻해요.

스페인 풍차마을 콘수에그라에서 풍차 곁에 앉아있다. ⓒ권미루 제공

여행 중에는 특히 세탁이나 수선이 어려울텐데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한복의 세탁과 수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한복도 일반 옷과 똑같이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특히 화학섬유 옷감을 이용한 한복은 물빨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데나 앉아도 되고 얼룩이 묻어도 괜찮아요. 여행을 다닐 때 챙겨간 옷을 모두 빨아 입나요? 그렇지 않죠. 집에 돌아가서 세탁하면 얼마든지 다시 깨끗해지기 때문에 굳이 곱게 아껴 입을 필요가 없어요.

‘한복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가 생기는 등 이전에 비해 한복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한복여행이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쁘잖아요. (웃음) 미디어에서 한복을 접한 사람들이 ‘예쁘다’, ‘나도 입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특히 요새는 조선 후기의 전통적인 복식뿐만 아니라 더 세련되고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이 늘어나고 있어요. 한복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옷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살아 숨쉬는 옷이 된거죠. 생활한복 브랜드 ‘차이킴’의 패션한복을 입고 스페인에 갔던 적이 있어요. 과거 신하들이 입던 관복을 원피스로 만들어낸 것이었죠. 저로서는 사람들이 이걸 한복으로 생각해줄까 걱정했는데 반응이 어마어마했어요. 차이킴 신드롬이 불면서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엄마의 지갑을 열게 했죠. 다양한 한복이 시장에 나오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가 될수록 한복은 우리와 더 가까워져요.

한복여행사진전도 주최했다. 어떻게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나.
한복여행에서 찍은 사진의 반응이 좋았어요. 모아서 전시를 열어볼까 했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하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복여행을 다녀왔던 사람들을 찾아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모아봤어요. 이런 사진들을 통해 한복이 그저 덥고 불편하고 입기 힘든 옷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죠. 뚝섬 통유리 전시장이나 인사동 쌈짓길 등 개방된 장소를 택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어요.

ⓒ권미루 제공

한복여행가로서 더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에 한복과 어울리는 곳이 정말 많아요. 이러한 곳을 한복을 입고 다녀온 우리문화유산답사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전통적으로 역사와 깊이가 있는 유적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전통옷을 입고 그 자리에 있는 감상을 엮어내볼 생각이에요. 굉장히 색다를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국내외 여행은 한복생활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시도를 한 것이라면 이제 더 의미가 있는 시도를 해보려 해요.

한복을 일상에서 입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먼저 같이 한복을 입을 수 있는 단체나 집단을 찾아보면 좋아요. 최근 몇몇 대학에서도 관련 동아리가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에요. 여럿이서 한복을 입으며 놀면 처음 한복입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즐거움도 더욱 크죠. 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꼭 한국이나 한복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그건 순수하게 한복을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죠. 한복을 그저 ‘예쁜 옷’으로 생각해준다면 충분해요.
 

한복여행가 권미루 씨가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에 올라있다. ⓒ권미루 제공